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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oday

억눌린 항공력의 恨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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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메인.jpg

-일반적으로 F-CK-1은 성능이 그저 그런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대만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높은 신뢰성과 준수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F-CK-1은 대만 최초의 국산전투기임에도 지난 25년 동안 단 4대만 추락으로 손실했다.

 

 

글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의 안보상황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비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만은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국제무대에서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작은 섬의 소국이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를 맺은 국가는 자동적으로 대만과의 수교관계가 단절된다. 특히 1971년 중국이 UN에 정식가입하면서 대만은 UN에서 반강제적으로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국제무대에서 점차 밀려나면서 중화국의 국제적인 정통성을 중국에 내주었다. 이때부터 많은 국가들이 중국과 수교를 맺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대만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현재 대만과 수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약소한 20여 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최소한 질적으로는 대만의 군사력은 중국과 해볼만하다고 애써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지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도무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대만은 미국으로부터의 무기수입과 직간접인 안보우산 아래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대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대만1.jpg

-마잉주 총리가 초도 도입된 AH-64E 가디언을 사열하고 있다. 2011년 30대 도입이 결정된 바 있는데 가디언과 같은 최신예 기체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공격헬기 특성상 중국을 직접타격할 수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 추세가 강해지면서 대만이 또 다른 중국으로서 존립하기 위한 노력은 그 명분도, 국민적 지지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대만 총통직을 수행한 마잉주의 핵심 대륙정책인 3불(不)정책은 이를 증명하는 바로미터다. 3불정책이란 중국에 대한 불통(통일하지 않는다), 불독(독립하지 않는다), 불무(전쟁하지 않는다)를 의미한다. 현재는 당연해 보이는 정책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이 대규모의 해병대를 양성하여 중국 본토수복전략을 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3불정책은 대외정책적으로 크게 후퇴한 것이다. 3불정책이라는 기조 아래 마잉주는 중국과의 관계회복에 주력하며 실질적인 교류를 가속화해왔다. 2008년부터 중국과 항공노선을 개설해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크게 늘고 있으며 대만기업들의 중국투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경제적으로도 이미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15년 11월 분단 66년 만에 시진핑과의 역사적인 첫 양안 정상회담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마잉주는 3선 연임 불가원칙에 따라 2016년 5월 물러나지만 새로 선출된 차이잉원 역시 ‘하나의 중국’으로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경제적·안보적 흐름으로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항공력 성장의 족쇄 대만관계법

중국의 거대한 힘에 맞서는 대만안보의 절대적인 축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이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공동방위 조약을 폐기하고 외교관계를 단절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로 생각될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 우방으로서의 관계유지와 공산주의 확대 견제 등의 이유로 ‘대만의 평화 유지, 자체 방어에 필요한 능력 제공을 위해 미국의 군수물자의 제한적 수출, 미국의 이익수호를 위한 대응력 유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중국과의 수교 5개월 만에 미 국내법으로 제정하여 발효시켰다. 즉, 커지는 중국과의 정치경제·외교적 균형을 갖추고 대만에서 실익은 챙기겠다는 것.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한 이상 대만은 미국제 무기도입에서 그때부터 많은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 대만관계법이 기본적으로 대만 방어를 위한 무기만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 도입은 아예 불가능해졌고, 군용기들 또한 성능이 제한적인 상태로 공급됐다.

이렇게 대만관계법으로 인해 군사력 성장의 한계를 가지게 된 대만은 공군과 해군전력의 중요성이 매우 큰 중국 본토수복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만군은 60여 년 동안 유지해온 징병제를 2014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 중에 있다.

한편, 대만관계법을 제정한 데에는 미국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중국의 정치경제와 군사력이 멈출 줄 모르는 확장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국제무대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대만이 언제 중국에 흡수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칫 대만에 첨단무기를 공급했다가 대만이 중국에 흡수되어 버리면 그 기술들은 고스란히 중국에 넘어가게 된다. 첨단무기를 대만에 제한없이 수출하는 것은 향후 미국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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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중인 E-2C 2000. 대만은 총 6대의 E-2T(대만 공군형)를 도입했는데 그중 2대는 가장 최신사양인 E-2C 2000으로 개량되었다. 

 

 

 

결정적 한 방이 없다

대만이 군사안보 측면에서 롤모델로 삼는 아시아 국가로는 영토와 자원에 비해 국가규모가 작지만 직간접적 안보위협이 매우 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싱가포르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싱가포르가 예산범위 내에서는 원하는 플랫폼과 시스템을 구매할 수 있는 반면, 대만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미국제 무기도입을 크게 제한받기 때문에 예산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성능적으로 만족스러운 항공력을 구축하기 어렵다.

 

월드투데이 표.jpg

 

표를 살펴보았을 때 대만의 항공력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탄탄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 플랫폼이 운용하는 공중병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것이 아킬레스 건으로 꼽힌다.

 

대만3.jpg

- F-CK-1이 AGM-154 JSOW와 유사한 장거리 순항미사일 “만검(萬劍)”을 장착하고 비행중인 모습. 만검은 미국이 중장거리 타격미사일 판매를 계속 거부하자 대만이 자체개발한 사거리 200km급 장거리 순항미사일로 그나마 한 방 다운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체계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의식해 미국이 대만에 장거리타격능력 부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어 대만의 항공력은 마치 ‘중국판 항공자위대’를 연상케 할 정도다. 예컨대, 대만 국산전투기인 F-CK-1 경국호(經國號)는 대만관계법의 족쇄가 낳은 사생아다. 대만은 F-5를 면허생산하고 있었으나 중거리 공격능력이 전무하여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에 1970년대 후반부터 당대 중거리 미사일의 대명사였던 AIM-7 스패로우를 운용할 수 있는 기체를 요구했다. 그러나 1979년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고 대만관계법이 발효되면서 대만이 중거리 공격능력을 갖춘 플랫폼을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대만은 후에 F-CK-1로 귀결된 국산전투기 IDF(Indigenous Defense Fighter)계획을 발족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쌍발전투기를 홀로 개발하는 것은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고 자체개발역량이 사실상 전무했던 엔진부문에 있어 준수한 성능을 갖춘 엔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IDF는 요망하는 수준의 성능을 갖추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이르러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소련이 동맹국들에게 성능이 향상된 전투기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동안 미국의 고성능 전투기의 선별적 수출제한 정책이 미 동맹국들의 공중우세를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은 대만의 IDF에 대해 F-16의 성능을 능가하지 않는 수준의 기체개발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이는 오늘날의 F-CK-1 개발로 이어졌다. 1989년 F-CK-1의 첫 비행을 성공시킨 대만은 총 250대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항공력의 전환점이 된 냉전종식

그런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냉전은 1991년 급작스레 막을 내렸다. 미국은 냉전시대 때처럼 더 이상 소련의 견제를 위해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로서 냉전종식 이듬해인 1992년 11월 대만에 F-16 판매가 결정됐다. 이에 대만은 냉전종식 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의식해 한 발 더 나아가 스패로우보다 훨씬 진보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AIM-120 암람 미사일과 암람 운용이 가능한 F-16C/D형 판매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향후 소련을 대신해 21세기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를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말아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타협안으로 내민 것은 F-16A/B였다. 다만 대만에 제안된 기체는 F-16A/B 블록 20형으로, 대만이 20여 년간 판매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스패로우 미사일을 그제야 비로소 운용할 수 있는 최초의 플랫폼이었다. 대만 입장에서는 암람 미사일 운용이 가능한 F-16C/D형을 구매하지 못한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중거리 공중전 능력과 공대지 정밀타격능력을 갖춘 기체에 대해 목말랐던 대만은 무려 150대의 F-16A/B를 한 번에 도입키로 결정했다. F-16A/B의 대량 도입의 영향으로 F-CK-1은 생산대수를 무려 120대나 줄인 130대로 생산을 종료했다. 국산 전투기보다도 F-16을 우선시한 조치였다. 대만이 그동안 F-16 도입을 얼마나 염원해 왔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에 미라지 2000 수출에 혈안이 되어있던 프랑스가 숟가락을 얹는데 성공한다.  바로 오늘날 미국제 일색으로 채워진 대만의 항공력 가운데 유별나게 눈에 띄는 프랑스제 미라지 2000-5Ei/Di이다. 대만은 대만관계법으로 인해 제한적인 성능만을 갖춘 미국제 항공기 도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미국이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원했던 F-16C/D형이 아닌 A/B형을 도입하게 된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찰나에 프랑스가 미라지 2000-5를 구매할 경우 당시 고성능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미카(MICA)와 최신예 매직2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제공을 제의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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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지 2000-5Ei 동체에 미카 4발과 주익 끝단에 매직2가 장착되어 있다. 특히 미라지 2000과 미카 미사일의 조합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중거리 공격능력을 대만 공군에 부여해 주었다. 

 

그간 제대로 된 중거리 공격 능력을 갖춘 전투기가 없었던 대만에게 프랑스가 내건 조건은 무척이나 반길만한 것이었다. 이에 도입협상을 전례없는 속전속결로 진행하여 F-16 150대 도입계약을 체결한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1992년 11월 17일 단좌형 미라지 2000-5Di 48대와 복좌형 미라지 2000-5Ei 12대 등 총 60대의 미라지 2000-5 도입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구매목록에 포함시킨 960발의 미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통해 그간 암람 미사일 등장으로 구식이 된 스패로우 미사일조차 판매를 거부해 오던 미국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기는 데에 성공했다. 그간 대만관계법에 묶여 뛰어난 성능의 기체와 중거리 미사일 도입에 느껴왔던 타는 듯한 갈증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통 큰 결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만은 F-5E를 F-16A블록 20으로, 요격 및 방공전투기로 쓰던 F-104 스타파이터를 미라지 2000-5Ei로 대체하면서 성공적인 현대화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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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하는 대만 공군의 F-16A. 날개 끝단에 암람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다. 프랑스가 대만에 미카 중거리 미사일을 판매하는 바람에 미국은 더 이상 암람 미사일 수출을 거부할 명분도, 실리도 사라지게 됐다. 결국 미국은 2003년에 이르러 대만에 암람 미사일을 판매하였다.

 

 

산적해 있는 문제들, 대만은 과연 어디로?

중국의 강력한 입김과 미국을 비롯한 무기판매국들의 중국 눈치보기로 인해 대만의 전력증강은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주력전투기를 비롯한 항공력 증강 문제는 다소 미시적인 문제일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마잉주의 대륙정책이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의존도를 점차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이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도 복잡하다. 대만은 중국견제 및 태평양 전략 구현을 위해 지정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나라 중 하나인데, 대만이 중국에 흡수될 경우 치러야할 직간접적인 추가 안보비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과의 흡수통합 형태의 통일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보다 미래 중국의 정치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이 더더욱 확대된 상태라면 대만이 흡수통합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대만을 위해 중국을 상대로 대신 싸워줄 거라고 기대하기에는 대만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중국이 너무 커져버렸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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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wan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푸젠성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로 중국 본토에서 약 150㎞ 떨어져 있다.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하였고, 청일전쟁 뒤 일본 최초의 해외 식민지가 되었으며,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이전하여 성립된 국가이다.

 

수도 타이베이

언어 중국어(만다린), 타이완어, 객가어

면적 35,980㎢ / 세계 139위

인구 약 23,359,928 명/ 세계 51위

화폐 뉴 타이완 달러(TWD)

GDP 5,088억$ / 세계 23위(2016 IMF 기준)

기후 북부지역은 아열대 기후, 남부지역은 열 대기후이다.

 

 

주요 여행지

예류지질공원  타이베이 북부 해안에 위치한 이곳은 해수욕장과 온천,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특히 희귀한 모양의 바위들이 해안에 모여 있는 이곳의 바위들은 세계 지질학계에서 중요한 해양 생태계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드넓은 바다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타이루거협곡  대만에서 네 번째로 지정된 국가공원으로 대만 100대 준봉 중에 제27위에 해당될 정도로 웅장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리석 산지인 화련현에 위치해 있으며, 협곡을 가로지르는 중부횡단고속도로를 따르는 도보 여행이 색다른 묘미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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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음식

우육면  쇠고기 뼈로 육수를 내고, 밀가루 면에 쇠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먹는 면 요리로, 대만의 국민 면 요리로 꼽힌다.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타이스샹창  일명 대만식 소시지로, 대만의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단독으로 먹기도 하고 볶음밥과 같은 요리에 함께 해먹기도 한다. 지역마다 다른 모양이 먹는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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