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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oday

유럽 군사리더십의 자존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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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항공기업인 다소 에이비에이션(Dassault Aviation)이 개발한 라팔과 팰콘 7X, 스텔스 무인전투기 뉴런(nEUROn)이 함께 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탄탄한 항공산업과 첨단 항공기술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글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NATO와 각을 세웠던 독자적 국방노선

나폴레옹과 샤를르 드골의 나라, 20세기 실존주의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와 위대한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의 나라, 예술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가졌다 자부하는 나라 등 프랑스를 수식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 프랑스를 설명하는 많은 수식어들의 기저에는 ‘자존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단순히 프랑스가 중세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다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은 아니다. 프랑스는 여전히 오늘날까지 군사, 경제, 정치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서 유럽을 이끌고 있다. 유럽의 경제리더십이 독일이라 한다면 유럽 최강의 군사력과 항공력을 갖춰 유럽 군사리더십을 자처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프랑스다.

오늘날 프랑스의 항공력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1949년 4월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다. 프랑스는 유럽의 일원이라기보다는 독자적 대외정책 노선과 독자항공기 개발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나라인데, 프랑스의 행보를 이같이 만든 주된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가 속해있는 NATO의 존재 때문이다.

냉전 시대 유럽의 군사리더십은 단연 영국이었다. 영국은 서방진영의 우두머리였던 미국의 맹방으로서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추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공조하며 NATO에서의 유럽 군사리더십을 자처했었다. 프랑스의 군사력은 당시 영국과 비등할 정도로 강력했지만 NATO로 대표되는 ‘하나의 유럽’을 미국이 이끄는 데에 반감을 가지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행보 때문에 유럽의 군사리더십은 미국과 항상 보조를 함께 하던 영국에 자연스럽게 그 무게감이 실렸던 것이다. 프랑스의 독자적인 목소리는 일단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도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왔던 유럽통합노력의 밑바탕이 된 유럽 민족주의를 지켜가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애초에 NATO의 모체는 1948년 3월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가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브뤼셀 조약을 맺고 결성한 최초의 서유럽 군사동맹인 서유럽동맹(WEU)이었다. 그러나 서방진영의 대표 격인 미국없이 유럽의 안보를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에 미국과 캐나다가 합류하면서 NATO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자적 유럽방위축의 초석이었던 서유럽동맹은 아주 손쉽게 사라져버렸고 유럽 안보의 키는 미국에 넘어가게 됐다.

 

NATO 탈퇴와 드골주의

유럽의 필요에 의해 미국이 NATO를 지휘하게 되었던 만큼 유럽국가들이 미국을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NATO의 군령을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미-영-불 3두 체제로 개편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고, 이것도 모자라 미국이 프랑스의 핵개발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해하자 프랑스는 독자노선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 2월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해 핵개발에 성공한 샤를르 드골 대통령은 NATO를 동맹체제가 아닌 프랑스의 독립과 국익을 제한하는 종속체제로 규정하고 결국 1966년 NATO에서 탈퇴했다. 미국과 소련 그 어느 쪽에 서기보다 민족 자결에 기반을 둔 비동맹 외교정책 드골주의(Gaullisme)의 시작이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자존심은 바로 이 드골주의에 그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고 프랑스를 세계의 강대국으로 올려놓은 핵심 가치가 됐다. 2009년 사르코지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가 NATO에 복귀하면서 드골주의의 종말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드골주의는 현 올랑드 대통령이 계승해 오늘날까지 프랑스의 핵심 대외정책 기조로 자리 잡고 있다.

NATO 탈퇴 이후 냉전 내내 프랑스는 핵억제력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국방노선을 걸었다. 항공력에서는 1964년부터 1996년까지 운용했던 미라지 IV 폭격기가 프랑스 공군의 공중 핵억제전력으로 활약했다(정찰형은 2005년 퇴역). 운용대수는 불과 62대로 다른 폭격기 운용국가들의 보유대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량이었지만 간격이 넓은 분산배치를 통해 30여 년 간 프랑스의 효과적인 핵억제 전력으로 활약한 바 있다. 미라지 IV의 퇴역 후 공중 핵공격 임무는 공군의 미라지 2000N과 해군의 슈페르 에탕다르가 승계받았다. 이어 개발된 라팔 역시 300kt급 핵탄두의 ASMP-A 순항미사일을 운용하며 핵공격 임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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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핵전력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켰던 미라지 IV. 핵개발 과정에서 미국 주도의 온갖 방해공작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프랑스에게 핵전력은 자존심 그 이상이었다.

 

프랑스의 우려가 현실로, 오디세이 새벽 작전

프랑스는 유럽의 안보를 유럽의 손으로 지키고자 하는 군사리더십을 강조하면서 NATO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과, 미국을 지나치게 따랐던 영국, 그리고 유럽 경제를 이끌면서도 군사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소극적·방관적이던 독일 등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갈등을 빚었다.

유럽의 안보가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프랑스의 우려는 2011년 3월 단행된 미국·프랑스 주도의 리비아 공습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소련 해체 후 유럽은 급격한 군축을 단행하면서 군사력의 질의 향상을 꾀했지만 양적인 면에서 지나치게 축소되었고 이는 화력과 전쟁 지속능력에 상당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미국이 리비아 공습작전이었던 오디세이 새벽 작전(Operation Odyssey Dawn)같은 기간 프랑스의 리비아 공습 작전명은 아르마탕 작전(같은 기간 프랑스의 작전명은 아르마탕 작전(Operation Harmattan)이다.을 13일 만에 종료하고 작전지휘권을 NATO에 이양한 이후 NATO의 공격능력이 눈에 띄게 약화됐다. 미군이 직접전투전력을 모두 철수시키고 지원기만 남기자 카다피의 정부군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던 것이다. 미국은 NATO에 대해 지나칠 만큼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유럽에게 NATO 운영분담금 인상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왔지만 오디세이 새벽 작전을 서둘러 종료하고 NATO에 작전권을 넘긴 이후에는 소극적으로 돌변했다. 미군의 공백은 공중과 해상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투입했던 프랑스가 메우며 고군분투했다.

미국의 태도변화는 이미 아프간과 이라크 두 개의 전장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던 미국에게 리비아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뿐만 아니라 리비아 석유시장을 고려할 때 미국의 핵심이익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제로 리비아의 석유수출국 중 절대 다수가 바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었기에 리비아 전쟁은 유럽의 핵심이익이 걸린 전쟁이었다. 이에 반에 유럽국가들 간의 상황도 제각각이었다. 프랑스는 여러 방면으로 국내정치에서 위기에 몰리고 있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너무 무리하게 공습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독일은 리비아 공습 자체를 반대했으며 프랑스에 라이벌 의식이 컸던 영국은 프랑스 주도의 작전 형세를 바꾸고 싶었지만 경제상황이 나빠 대규모의 투입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이 새벽 작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프랑스가 줄곧 부르짖었던 명제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동안 유럽의 안보는 크게 약화됐고, 미국 주도의 NATO는 유럽의 이익과 안보를 항상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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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공습에 참여한 유럽국가 중 가장 대규모의 항공력을 투입한 나라가 프랑스다. 라팔은 이 작전을 통해 실전데뷔전을 치렀고 참전했던 모든 NATO 전폭기들을 압도하는 활약을 펼쳤다.

 

가장 이상적인 항공력의 콤비네이션

2015년 말 기준 프랑스의 항공력을 구성하는 기체 수는 1,282대로 미국-러시아-중국-인도-일본-대한민국에 이어 세계 7위 규모다. 하지만 순위에서 보여지듯 수량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만큼 항공력의 질과 양 모두의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는 미국-러시아-중국에 이은 세계 4위의 항공대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음에는 부족함이 없다. 전투기부터 폭격기, 각종 지원기와 특수목적기, 그리고 해군 항공력의 기반이자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핵항모까지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유럽국가이기 때문이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프랑스는 유럽 군사리더십의 자존심을 지키고 유럽의 안보가 과도하게 미국에 의존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에 냉전 종식 후 단행된 유럽의 대규모 군축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질과 양을 지켜온 유일한 유럽국가이기도 하다. 냉전시절 유럽 군사리더십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영국은 경제난으로 항공력을 대폭 축소해 최근 10여 년간의 대규모 분쟁에서 선봉에 선 프랑스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라팔과 미라지 시리즈와 같은 전투기부터 다양한 유형의 항공기를 자국산으로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 스텔스 무인전투기(UCAV) 공동개발 프로그램 뉴런(nEUROn)을 자국 항공기업인 다소 에비에이션 주도로 개발 중에 있다. 각종 헬기전력은 유럽연합과의 공동으로 개발한 항공기 다수를 도입하고 있다. 에어버스 그룹의 복잡한 지분관계에서 프랑스의 지분이 상당함은 물론이다. 미국제 기체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E-3F, E-2C 등 조기경보통제기와 같이 개발 리스크와 비용이 큰 기체나 C-130J처럼 가성비가 뛰어난 기체는 미국제를 도입해 윤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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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국산 고등훈련기 알파제트. 1977년부터 실용화되어 13개국에 수출되었고 480여 대가 생산된 만큼 꽤 성공한 훈련기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현재까지 주력 훈련기로 운용 중이지만 오래된 기체인 만큼 2014년부터 이들을 대체하기 위한 계획이 시작됐고 자국산 개발이 아닌 해외 도입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탈리아의 알레니아 아에르마키 M-345가 이미 2015년에 프랑스 방위획득국의 평가를 받은 가운데 여러 훈련기들이 후보기종으로 물망에 올라있다.

 

또 하나 특징이라면 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수송기와 공중급유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기존 수송기 전력이 충분했지만 중소형 수송기들뿐이어서 주요 분쟁 참전을 위한 해외 전개 시에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An-124 수송기를 임대해야만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는 독일에 이어 가장 많은 A400M을 주문해 순차적으로 인수 중에 있다. 또한 14대를 운용중인 KC-135FR 공중급유기는 9대의 A330 MRTT로 대체할 예정인데 궁극적으로는 총 12대까지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A330 MRTT가 수송능력이 강조되어 있는 공중급유기임을 감안하면 가까운 장래에 프랑스의 장거리 전개 및 수송능력은 매우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원거리 전개능력에 필수적인 수송기 및 공중급유기를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고 또한 이를 크게 향상시키려는 점은 프랑스가 국익을 위해서 각종 분쟁에 언제든 독자적이고 주도적인 개입을 하겠다는 의지를 대변한다. 이처럼 프랑스는 탄탄한 자국 항공방위산업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자국산 기체로 항공력을 구축하되 유럽의 일원으로서 공동개발 사업에도 활발히 참여함과 동시에 비용 및 개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소수의 외산 기체를 도입하는 등 가장 이상적인 항공력의 콤비네이션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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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50대를 주문한 A400M.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기 위한 대형수송기의 부재에 대한 갈증이 매우 컸던 프랑스에게 A400M은 소중한 전력이 될 것이다.

 

리비아에서의 첫 대결 라팔 vs 유로파이터

프랑스는 2010년대에 들어와 리비아 공습과 말리 내전, 최근의 시리아·이라크 IS 공습까지 대규모 분쟁에 꾸준히 참전해 실전경험을 축적했으며 자국산 무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해 왔다(물론 이 때문에 2015년 샤를 앱도 총격사건과 파리 테러, 그리고 최근의 니스 트럭 테러 등과 같은 끔찍한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2011년 리비아 공습은 상당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프랑스 항공력의 상징과도 같은 라팔과 유로파이터가 처음으로 동시에 실전 투입된 전장이었기 때문이다. 라팔은 2007년 3월 아프간에서 레이저유도폭탄을 투하하며 실전데뷔를 치른 바 있었고 유로파이터는 리비아 공습이 데뷔무대였다. 게다가 리비아에서 데뷔한 유로파이터는 라이벌인 영국 공군 소속이었다(이탈리아도 유로파이터를 전개시켰지만 방공임무에만 투입됐다).

하지만 결과는 라팔의 싱거운 승리였다. 유로파이터는 높은 운용비에 따른 가동률 저하에 고통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산문제로 무장통합을 차일피일 미루다 리비아 공습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스탠드오프 미사일인 스톰쉐도우는 커녕 레이저유도폭탄 운용조차 레이저 조사(laser designation)를 토네이도 전폭기에 의존해야만 했다. 반면 라팔은 리비아의 방공망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개전 초기부터 미국과 함께 공격의 선봉에 서서 NATO가 작전권을 인수한 이후에도 레이저유도폭탄, 스칼프 EG 순항미사일로 리비아를 연일 맹폭했다. 전투기 시장에서 맥을 못 추던 라팔은 리비아 공습을 계기로 뛰어난 전투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고 이는 이듬해인 2012년 인도(124대 면허생산: 2015년 36대 직구매로 변경확정)를 시작으로 이집트(24대 직구매), 카타르(24대 직구매) 등 연이은 승전보로 이어졌다. 기종선정이 지연되고는 있지만 UAE 역시 라팔을 도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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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팔과 유로파이터의 운명을 갈랐던 것은 함재기로의 병용 여부였다. 프랑스 공군은 준수한 성능의 미라지를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었으므로 라팔 개발 동기의 7할 이상은 결국 해군형 라팔 M이었다. 프랑스의 라팔 독자개발에 대한 전투기 시장의 평가는 2011년 리비아 공습 이전까지는 완전한 실패로 여겨졌지만 이후에는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 놓았다.

 

France

프랑스는 유럽 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공화제 국가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프랑스공화국(The French Republic)으로, 987년 프랑크 왕국이 멸망하고 카페 왕조 창시로 최초의 국가가 형성되었다. 절대왕정과 제정, 공화정을 반복하다가 1871년 공화정부 수립 이후 오늘에 이르렀다. 종교는 대부분 가톨릭을 신봉한다.

 

수도 파리

언어 프랑스어

면적 43,801㎢ 세계 43위(CIA 기준)

인구 약 66,259,012명 세계 21위(2014. 07. est. CIA 기준)

화폐 유로(Euro, EUR)

GDP 2조 4,648억$ 세계 6위(2016 IMF 기준)

기후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 기후

 

Travel tip

주요 여행지

루브르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며, 1190년 지어졌을 당시에는 요새에 불과했지만 16세기 중반 왕궁으로 재건축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그리스·로마 미술품부터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의 작품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몽마르트르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로트레크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어 인상파·상징파·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다.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 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대표 음식

라타투이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 요리로 가지, 호박, 피망, 토마토 등에 허브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뭉근히 끓여 만든 채소 스튜이다. 특히 여름철에 즐겨 먹으며,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로제 와인을 곁들인다.

 

타르트

반죽을 타르트틀(파이 접시)에 깔고 과일이나 채소로 채우고 위를 덮지 않아 재료가 그대로 보이게 하는 프랑스식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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