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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최근 국내 항공산업 동향을 굳이 비유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좇는 형상이다.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과 민수 겸용 소형헬기를 개발하는 LAH/LCH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여러 사업들을 동시에 추진한 적이 있지만, 이들 두 사업처럼 고도의 기술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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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Story

전 국민 유니폼의 탄생, 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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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국민 유니폼이다. 난방이 시원치 않은 사무실에서도 ‘이 옷’을 동료 여럿이 껴입고 있고, 날씨가 풀린 날 점심시간에는 꼭 이 옷을 걸친 사람과 마주쳐 민망하다. 휴일에 동네 아저씨, 아줌마 가운데도 이 옷을 입고 산책에 나서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아파트에서 세 살짜리 아이가 입은 것도 보았다. 이 옷은 바로 한 의료 회사가 만든 인조 솜털 재킷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겨울마다 내복 대신 입기 시작한 ‘발열 내의’까지 염두에 두면, 아마도 전 국민이 이 회사의 옷을 한 벌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의류 회사 ‘유니클로’ 얘기다. 그런데 이 친근한 이름의 의류 회사는 언제부터 쑥 하고 일상생활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글 강양구   일러스트 신미래

 

유니클로1.jpg

극적인 유니클로의 탄생
유니클로, 일본어로 읽으면 ‘유니쿠로’로 발음되는 이 옷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1984년 6월 처음 등장했다. 이 옷의 탄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야나이 다다시다.
야나이의 아버지는 1949년 3월부터 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남성복 전문 매장(Ogori shoji)을 운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일을 돕던 야나이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옷을 누구나 쉽게 입어보고,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매장을 연다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자마자 곧바로 추진한 점포가 바로 유니클로 1호점이었다.
애초 매장의 이름은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 일본 사람들이 ‘유니크 클로징’을 ‘유니쿠로’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유니클로’라는 명칭이 탄생했다. 야나이는 1991년 10월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 이름을 ‘패스트 리테일링’으로 변경했다. 유니클로는 패스트 리테일링의 브랜드다.
야나이의 도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가파르게 성장한 유니클로의 2015년 매출은 우리 돈으로 약 16조 원. 한국 유니클로의 매출은 약 1조 원. 한국 진출 10년 만에 1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현재 야나이 회장과 그 가족의 재산은 약 25조 원 정도로, 일본 부호 순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인조 솜털 재킷의 기적?
일본 히로시마의 지역 옷가게에 불과했던 유니클로가 일본을 넘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니클로가 1994년 선 보인 인조 솜털 재킷도 한몫했다.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가공해 다양한 옷감의 방한용 소재로 쓰였던 ‘플리스(fleece)’는 원래 고가의 겨울 아웃도어 의류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유니클로의 차세대 주력 상품을 모색하던 야나이 다다시는 바로 이 플리스 소재로 옷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플리스의 일본어 발음 ‘후리스’를 상품명으로 한 인조 솜털 재킷이 탄생했다.
“후리스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원래 겨울 스포츠, 등산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의류 소재였어요. 그런데 이것으로 겨울용 일상복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처음에는 후리스를 패션 매장에서 파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지요. 등산복이 아니라 일상복 수요 쪽이 컸습니다.”
야나이 다다시는 플리스의 새로운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혁신’이야말로 유니클로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조 솜털 재킷을 내놓고 나서 유니클로는 1997년 생산부터 판매까지 독점하는 SPA 방식을 도입했고, 1998년 10월에는 도쿄의 번화가 하라주쿠에 유니클로 매장을 개점해  일본 열도와 세계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니클로2.jpg

 

학력, 나이, 장애 유무도 안 본다!
이런 유니클로의 성공이 야나이 다다시 혼자만의 공일 리는 없다. 실제로 그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직원의 헌신이 있었다. 여기서 유니클로의 독특한 인사 철학이 등장한다. 유니클로는 학력, 성별, 나이, 국적, 근속 연수, 장애 유무 등을 보지 않고 철저히 실력 중심의 평가를 통해서 승진 기회를 주는 ‘완전 실력주의’를 인사 정책으로 내세운다. 유니클로 매장을 가보면 20대의 젊은 점장이 수십 명의 직원을 이끄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인사 정책의 결과다. 업무 성과에 따라서 매년 두 차례 승진 기회가 있는데, 주부든 고졸이든 실적만 좋으면 부점장이나 점장에 오를 수 있다. 심지어 실적만 좋으면 부점장이 된 지 7개월 만에 한 단계 올라 점장이 될 수도 있다. 국내 의류 업계에서 유니클로 매장 직원을 스카우트하려는 경쟁이 종종 벌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완전 실력주의 인사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다. 업무 환경도 독특하다. 직원이 초과 근무를 못하도록 오후 7시가 되면 본사의 모든 조명을 꺼버리는 정책도 유명하다. 직원의 개인 책상이 따로 없고, 카페처럼 라운드테이블과 의자만 있는 사무실 공간도 화제다. 직원은 출근과 동시에 개인 사물함에서 물건을 챙겨서 빈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방식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매장의 노동 강도가 센 탓에 몇 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직원이 상당하다는 비판, 실적 경쟁 때문에 점장 등의 관리자가 개인적인 초과 근무를 통해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 중국 등의 하청 공장의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제2의 유니클로를 기대한다
한국에서 유니클로는 값싸고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도 괜찮은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혔다. 그런데 한때 일본에서는 유니클로가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입는 옷’이라는 이미지로 통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자에게 인기 없는 남자 순위에 유니클로 입은 남자가 당당한 순위에 들기도 했다고.
2000년대 후반에는 ‘유니클로 입었다는 걸 들키다’의 줄임말인 ‘유니바레’가 신조어로 유행했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 유니클로의 이미지 쇄신 노력으로 일본 현지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옅어졌다고 하는데, 한국은 어떨까? 너도 나도 유니클로 옷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요즘 분위기는 좀 과한 것 아닌가?
도전적인 창업 정신을 가진 한국의 중소기업도 유니클로 뺨치는 좋은 품질과 멋진 디자인의 값싼 옷을 좀 내놓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유니클로의 인사 정책보다 훨씬 멋진 (‘경쟁’보다 ‘상생’을 강조하는) 문화까지 자랑할 만한 그런 기업이었으면 더욱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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