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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최근 국내 항공산업 동향을 굳이 비유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좇는 형상이다.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과 민수 겸용 소형헬기를 개발하는 LAH/LCH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여러 사업들을 동시에 추진한 적이 있지만, 이들 두 사업처럼 고도의 기술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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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최태지 댄스컴퍼니 대표-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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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립발레단장이자 현 댄스컴퍼니 대표인 최태지는 1983년부터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활약했고 1996년 최연소 국립발레단장이 되었다. 2013년 국립발레단장을 그만둔 후 ‘댄스컴퍼니’를 만들어 여전히 발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 아직도 현역 발레리나 못지않은 우아함을 보여주는 그녀에게서는 몸의 유연함뿐만 아니라 생각의 유연함도 느껴졌다.
글 채의병   사진 김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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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바라보는 것
최태지 대표는 2013년 국립발레단장을 그만둔 후에도 여전히 발레와 인연을 맺고 있다. 댄스컴퍼니를 설립했고 작년 상반기에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무대에 올리는 ‘모닝 톡톡톡’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발레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태지 대표가 무용수들과 함께 발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호평을 받은 ‘모닝 톡톡톡’은 높은 무대 위,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던 발레에 대해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저는 항상 찾아가는 공연을 좋아했어요. 국립발레단장이 된 후에 바로 찾아가는 발레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었는데, 서울이 아니라 가능하면 지방이나 작은 학교 같은 곳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죠. 발레가 관객과 친숙하게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서 97년부터 ‘해설이 있는 발레’를 공연하기도 했는데요.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무대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발레가 더 대중화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최태지 대표는 무대 위에 있을 때도, 무대를 기획할 때도 늘 관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관객이 호응해 줄 때 더 큰 힘을 느꼈던 경험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 중심의 발레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이라도 관객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없다면 그 의미는 크게 줄어드는 것 같아요. 작은 공연에서 오히려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고 지방에 갈수록 관객들이 발레를 많이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을 느끼며, 크기나 규모와 상관없이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싶었어요. 예술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관객과 같이 존재하고 소통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니까요.”

 
몸을 스트레칭 하듯, 사고도 유연하게
최태지 대표는 발레의 아름다운 몸동작에 매혹되어 발레를 시작했지만,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웃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발레를 하는 것이지 발레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는데 발레의 신은 결국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출산 후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장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기도 했어요. 정말 특별한 선생님들께서 계속 저를 끌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니까 저는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소통해왔기에 그녀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문이 열리듯 그렇게 기회가 다가왔다. 그녀는 중요한 결정들 사이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지만 기쁨만큼이나 두려움과 책임감도 크게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최연소 국립발레단장이 되었을 때는 특히 그랬다는데,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일하며 그녀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단원들과의 소통과 관계. 수평적 사고방식으로 먼저 다가서며 단원들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고, 힘들어 하는 단원들이 있을 때는 강요하기보다는 여유 있게 생각하고 쉬어 갈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단장과 단원이라기보다는 같은 분야의 선후배이자 동료로서 다독여주며 손을 잡는 것으로 화합을 이끌었다.
그녀는 예술가도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통해 생각의 틀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예술가라는 틀에 사로잡혀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길을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고 사고의 폭을 넓히다 보면 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라고 조언하죠.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수평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런 경험이 예술가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발레리나로 출발해 국립발레단장을 거쳐 지금도 여전히 발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를 보며 몸을 스트레칭 하듯, 사고도 늘 스트레칭을 해주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 수많은 관계들을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풀어내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인터뷰 내내 유려한 몸짓으로 유연한 사고를 풀어내는 그녀. 부드러움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그녀를 보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Profile
1959년 출생.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가이타니발레학교, 프랑스 프랑게티발레학교, 미국 조프리발레학교 등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그 후 가이타니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국립발레단 단장 및 예술감독, 국립발레단 대표, 정동극장 극장장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한국인 최초로 로잔국제발레콩쿠르와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주요 출연작으로 <돈키호테> <지젤> <노트르담의 꼽추> <레퀴엠> <왕자호동> 등이 있고 <판타지 발레 바리> <호두까기 인형> <해적> 등을 안무했다. <즐거워라 발레>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현재 최태지댄스컴퍼니를 설립,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며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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