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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ESSAY 작은 영웅이 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힘이 없는 사람 위에 군림하려 들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책임, 나아가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선(善)을 행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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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소통하는 셰프, 최현석의 요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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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 국내파 신화, 셰프테이너…, 최현석 셰프를 수식하는 단어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를 증명하는 커리어는 단 하나, 그가 바로 요리하는 사람인 ‘셰프(chef)’라는 사실이다. 오로지 한길을 걸으며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우뚝 선 그를 <Fly Together> 편집팀이 만나봤다.
글 조희진 

사진 안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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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셰프, 요리의 즐거움을 전하다
최현석 셰프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쿠킹클래스. 평일임에도 쿠킹스튜디오 내부는 최현석 셰프를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미디어에서의 인기도 그렇지만 필드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실력 있는 대세 셰프, 그런 그에게서 직접 요리를 배운다는 것이 꽤 설레는 모습들이었다. 이날 진행된 쿠킹클래스는 한우자조금에서 주최한 행사로 최현석 셰프는 ‘건강’을 주제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한우요리 두 가지를 선보였다.
최현석 셰프가 예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자세로 소금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지켜보던 이들이 환호를 보내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최현석 셰프의 유연한 진행에 쿠킹클래스 참여자들은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그의 요리하는 손놀림과 그가 말하는 쿠킹팁 하나하나에 집중해가는 모습이었다.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매너는 익히 TV에서 보아온 그대로. 하지만 최현석 셰프의 손끝에서 ‘뚝딱’하고 요리가 완성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지켜보는 순간은 역시 마술 같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쿠킹클래스에서 시연하거나 방송에서 요리할 때는 평소보다 더 즐기면서 유쾌하게 하려고 해요. 많은 분이 요리를 즐거운 일이라고 받아들이시길 바라기 때문이죠.”
시연이 끝나고 참여자들이 소개 레시피를 실습하는 시간에도 최현석 셰프는 일일이 각각의 요리를 시식하고 과정을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요리가 직업인 저도 그래요. 혼자 집에서 맛있게 먹을 수도 있지만, 요리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이 만든 훌륭한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 욕심이 더 나거든요.”
최현석 셰프는 직접 요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전문 셰프가 만든 ‘파인다이닝(fine dining)’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아지지 않겠느냐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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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는 개성 있고 재능 많은 사람의 직업,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20여 년을 달려왔다. 대세가 되고 천재 요리사로 주목받게 된 것은 어느 날 문득 일어난 일이 아니다. 1995년, ‘라쿠치나(Lacucina)’에서 처음 요리를 시작해 12년을 머무르며 내공을 쌓았다. 이후 ‘테이스티 블루바드(Tasty BLVD)’를 거쳐 현재의 ‘엘본 더 테이블(El bon the table)’ 총괄셰프로 재직하기까지. 열정과 성실함은 최현석 셰프가 가장 창의적인(creative) 셰프로 인정받는 데 기본이 되었던 요소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성공 이후지만, 2007년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추천한 문화 예술가들의 30대 기수’에 선정될 만큼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다. ‘테이스티 블루바드’ 시절에는 훈남 셰프로 알려져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인기 셰프에 등극한 지도 오래다.
직접 창작한 레시피만도 천여 가지에 달한다. 그의 또 다른 닉네임인 ‘크레이지 셰프(crazy chef)’는 긴 세월 꾸준히 그를 지탱해온 ‘열정’이라는 요소를 잘 드러낸다.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지만 ‘셰프(chef)’만큼 그와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최현석이라는 이름과 ‘셰프(chef)’라는 단어의 어울림에는 운명적인 느낌이 있다.
“20년 전에도 요리사라는 직업이 뜰 거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인식이나 처우는 많이 열악했어요.”
최현석 셰프가 처음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를 회상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고 일류 셰프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는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업계에 새로운 희망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기타 연주와 노래, 각종 무술을 비롯한 야구 등의 스포츠에 일가견이 있고 그림에도 재주가 많은 그다. 어린 시절부터 피규어를 모아왔던 그의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통달한 최현석 셰프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매개다.
“요리하는 사람들이 원래 개성이 강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능이 많아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단순히 요리가 좋아 열악한 현실과 처우를 받아들이는 환경이 그는 늘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 사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의 쿡방과 다이닝 열풍은 최현석 셰프에게 더없이 반가운 현상이다.
“점점 좋은 기회가 많아지고 요리사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고 감사한 일이죠.”
최현석 셰프는 결국에는 요리사라는 직업 또한 기술직이고 생계를 위한 노동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어떤 분야에서든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경지가 된다면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인다. 늘 끊임없이 요리의 정도를 지키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에게 ‘아티스트’라는 이름은 충분해 보인다. 기회 없는 현실에서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기회를 창조해온 이들에게 대중은 박수갈채를 보내기 마련이다. KAI가 오로지 실력으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며 박수를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는 혁신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최현석 셰프와 KAI가 참 많이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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