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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Story

흥행 불패, ‘픽사’의 성공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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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40대까지를 묶어주는 공통분모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을 꼽겠다. 1편부터 3편까지 제작된 <토이 스토리, 1995~2010>, 전 세계적으로 ‘니모’ 열풍을 낳은 <니모를 찾아서, 2003>뿐만 아니라 <라따뚜이, 2007>, <월-E, 2008>, <업, 2009> 거기다 <니모를 찾아서>의 속편으로 최근 개봉한 <도리를 찾아서, 2016>까지. 이 세대라면 픽사 영화 한 편쯤은 봤을 법하기 때문이다. 다섯 살배기 아이부터 40대 아저씨, 아줌마까지 웃고 울리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1995년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단 한 편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 세계인을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끈 픽사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자.

 

글 강양구 일러스트 신미래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 픽사를 만들다

스티브 잡스 하면 모두가 ‘애플’이나 ‘아이폰’을 떠올린다. 하지만 픽사야말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꿈꿨던 가장 잡스다운 창조물이다. 잡스는 1986년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파트를 1,000만 달러에 사들이고 컴퓨터의 화소를 의미하는 ‘Pixel’과 예술 ‘Art’의 합성어인 픽사를 시작한다.

1985년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던 잡스는 애초 픽사를 애플에 버금가는 컴퓨터 회사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시작했던 사업도 정부 기관이나 의료 기관에 컴퓨터 그래픽 전문 하드웨어를 제조·판매하는 일이었다. 픽사가 만든 최초의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1986년)도 이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홍보용으로 만든 <룩소 주니어>가 이듬해(1987년)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자, 픽사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쪽으로 사업 방향을 돌린다. 그러다 1990년대 초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직접 나선 픽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3,000만 달러(한화 약 329억 원)를 들여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을 내놓는다. 바로 <토이 스토리>(1995년)다.

<토이 스토리>는 미국에서만 1억 9,000만 달러(약 2,085억 원), 전 세계적으로 3억 6,000만 달러(약 3,950억 원)를 벌면서 픽사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다. 픽사는 <벅스 라이프>(1998년), <토이 스토리 2>(1999년), <몬스터 주식회사>(2001년), <니모를 찾아서>(2003년>, <인크레더블>(2004년)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흥행 불패 신화를 쌓는다.

픽사의 성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잡스는 1997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애플의 임시 대표로 복귀하고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을 발표하며 오늘날의 애플 신화를 만든다. 지금 픽사의 본사에는 ‘스티브 잡스 빌딩’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이 건물은 잡스가 픽사에 있을 때 직접 디자인에 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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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디즈니를 바꾸다

픽사는 2006년에 또 한 차례 큰 변화를 맞는다.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디즈니가 픽사를 74억 달러(약 8조 1,200억 원)라는 엄청난 금액에 인수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픽사의 직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으니, 픽사의 에드윈 캣멀 사장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을 겸임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픽사가 ‘디즈니 살리기’에 투입된 셈이다.

<라이온 킹>(1994년) 이후에 무려 12년 동안 아무런 흥행작이 없었던 디즈니가 픽사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것이다. 그렇게 픽사와 합병하고 나서 디즈니는 <라푼젤>(2010년)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그렇다면 ‘미다스의 손’ 뺨치는 픽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직원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게 내버려 두는 것’ 즉, 직원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모두가 조직의 주인이 되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픽사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결정을 내릴 때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

그렇다면 중구난방이 되지 않을까?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픽사 특유의 피드백 문화다. 픽사 직원은 매일 오전 의식처럼 모여서 전날의 업무 진척 상황을 발표하고 상사와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받는다. 커피와 과자를 즐기면서, 때로는 소파에 반쯤 누워서 하는 회의지만 오가는 피드백은 송곳 같다. 물론 이 회의에서는 직급에 따른 계급장 따위는 없다.

자칫하면 직원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이런 회의를 매일 오전 진행함으로써, 픽사는 피드백 문화를 만들었다. 이 회의에서는 인턴 직원뿐만 아니라 <토이 스토리> 성공의 주역인 존 라세터 감독도 업무 진척 상황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모두가 평등한 피드백이 매일 계속되니 개인의 창조성이 집단의 창조성으로 변하는 것이다.

 

실패자가 성공하는 법

잡스가 디자인에 참여한 픽사 본사는 유리로 덮은 세로 150m 길이의 기다란 건물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화장실, 회의실, 카페, 식당이 모두 거대한 중앙 로비에 몰려 있다. 때문에 픽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면 하루에 한 번쯤 어디서든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는 잡스가 조직의 일상적인 ‘소통’을 위해서 강제로 만들어 놓은 장치다.

이런 건물에서 일하면 예술 담당 직원, 기술 담당 직원이 의도치 않게 우연히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때로는 그러다 눈이 맞아서 연애도 한다. 자연스럽게 조직 내의 소통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픽사의 창업 철학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픽사는 ‘픽사 대학’이라는 사내 교양 강좌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서로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다양한 직원이 이 픽사 대학에서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픽사의 흥행 불패 신화에는 이렇게 좌우 또 위아래의 벽을 허물며 창조성을 북돋는 조직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애플에서 쫓겨난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물론이고 픽사에는 유달리 패배자가 많았다. <토이 스토리> 신화의 주인공인 존 라세터는 사회 초년병 시절 디즈니에 입사했다가 해고당한 전력이 있었다. <인크레더블>, <라따뚜이>를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도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에서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이런 실패자가 픽사 울타리 안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 비법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구성원을 신뢰하며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픽사의 기업문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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