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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골프 여제 박세리,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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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프로 골프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인 박세리와 한국 항공산업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KAI는 닮은 점이 참 많다. 한국 항공의 중심에 KAI가 존재하듯 한국 골프의 중심에는 늘 박세리가 있었고, KAI가 한국 최초 군용기를 생산했듯이 박세리는 한국 최초로 LPGA투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런 의미에서 KAI와 박세리에게는 늘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런 박세리가 지난 10월 은퇴를 알렸다. 하지만 아직도 그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선보일까? 

 

<글 고형승(골프다이제스트 기자)  / 사진 제공 골프다이제스트 데이터,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JNA 정진직>

 


Adieu, Se Ri Pak
골프 여제 박세리. 항상 강하게만 보였던 그녀다. 1980년대 발매된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졌다. 심드렁하게 툭툭 내뱉는 말투와 거침없는 걸음걸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둘러싼 호위 무사들(경호원)까지.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는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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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요술 공주 세리가 아닌 겨울왕국의 엘사가 방금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팬들은 가까이 가서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선수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언론사 기자들 역시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에디터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메모하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당시엔 골프에 대한 명확한 지식도 없었던 터라 ‘스푼’으로 공략했다는 말에 “스푼이 뭐예요?”라고 반문했으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 아니었겠나. 그래도 한시름 놓였던 건 그녀가 차분히 설명해주면서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일 때부터였다. 지금은 스스럼없이 대하며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게 됐지만 2000년대 초반의 그녀는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언맨(아이언우먼이라고 해야 하나?)처럼 보였다. 


그런 박세리가 지난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난 10월 자신이 최고로 잘할 수 있었던 한 가지를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골프 팬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분명 그 눈물에는 많은 회한과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을 게다. 평생 일하던 직장을 나오면 배우자를 잃었을 때와 버금가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박세리 역시 당분간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녀는 진정한 아이언맨으로 거듭나야 할 테다. 

 

박세리와 한국 프로 골프
과거 각 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야구의 박찬호, 축구의 박지성,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그리고 골프의 박세리. 물론 현재 그 자리는 다른 얼굴로 바뀌었거나 공석인 상태지만. 골프는, 특히 여자 골프는 여타 스포츠보다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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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지면 지금은 고인이 된 구옥희가 1세대 골퍼로서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튼 선수이기도 하고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로는 첫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정일미, 서아람, 박현순 등 1.5세대라 불리는 젊은 선수들이 등장해 판을 키웠다. 그리고 박세리와 김미현, 강수연 등 골프 2세대의 등장은 한국 여자 프로 골프의 도약기를 만들어냈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20홀 연장 끝에 태국계 아마추어였던 제니 추아시리폰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골프 팬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이때 18번홀에서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로 들어가서 레이업하던 모습은 아직도 한국 골프 역사의 명장면이라 하겠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 골프를 넘어 한국 골프 대중화의 일등 공신이다. 


그 이후 이른바 ‘세리 키즈’라 불리는 박인비를 비롯한 신지애, 최나연, 이보미, 김하늘, 박희영 등 골프 3세대가 그 뒤를 이었다. 세리 키즈의 대부분은 1988년생으로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경우가 많다. 현재는 다음 세대인 전인지, 장하나, 김세영, 김효주, 고진영, 박성현 등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선수들이 세계 골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느덧 우리는 골프 5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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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의 중심에는 늘 박세리가 있었고 앞으로도 한국 여자 프로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할 것이다. LPGA 마이크 완 커미셔너는 “박세리는 위대한 선수이자 선수들에게 좋은 멘토이며 코치이기도 했다”면서 “이제는 부모처럼 따르는 선수가 됐다”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더는 투어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겠지만 내가 커미셔너로 있었던 지난 7년간 그녀는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고맙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골프 여제 박세리의 다음 스텝
박세리는 은퇴를 며칠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심란하다’는 단어를 사용했다. 또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 골프만 생각하고 골프만 해오던 사람 아닌가.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한국 선수이자 올림픽 감독까지 맡았던 그녀에게 다음 스텝을 어떻게 뗄 것인가에 대한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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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쉽고 섭섭하다”면서 “운동선수 이후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은퇴 후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앞으로 내 인생 계획을 세우는 모습 역시 좋은 본보기로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도 이제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무엇도 장담할 수 없지만 내 자리를 잘 만들고 싶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박세리는 “최고의 골퍼, 최고의 선수도 좋지만 앞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얼마 전 타계한 아널드 파머처럼 골프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족하지만 배우면서 골프계에 도움이 되겠다”라고 말했다. 


그럼 박세리는 은퇴 후 어떤 진로를 택하게 될까? 지금부터는 순전히 에디터의 개인적인 예상이다. 가장 먼저 박세리의 자서전이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세리와 골프 선수 박세리 그리고 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로 들어가는 사진이 잔뜩 실리겠지. 아 참. 아버지 박준철 씨도 엑스트라로 등장할 것 같다. 여러 부분에서. 하지만 책은 그리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다. 


다음 스텝은 ‘박세리 희망재단’의 활동 영역을 더 넓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동안 박세리가 해외에 머물면서 자신의 재단 관리에 소홀한 면도 있었을 거라는 판단에 하는 소리다. 


다음 스텝? 골프 중계 해설은 절대 아닐 것 같다. 그럼 박세리 골프 아카데미? 노 노. 그것도 아니다. 아마도 잠깐씩 방송에 얼굴을 비치다가 협회에서 일할 것 같다. 골프 행정가로 멋있게 변신하는 거다. 스타트는 전무이사나 감사가 좋겠다. 이후에 부회장을 거쳐 수석부회장 그리고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쉰 살이 넘으면 KLPGA 회장 자리에 올라도 좋지 않을까? 회장 박세리라.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

 


< Mini Interview >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

 

Q. 당신에게 많은 선수가 조언을 구했다. 그동안 어떤 이야기를 해줬나?


A. 나 역시 KLPGA의 선배들을 보며 꿈을 키웠고 LPGA투어에 도전했다. 꿈을 향해 많이 노력했다. 운이 좋아 괜찮은 결과가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나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후배들이 LPGA에 와서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기도 한다. 내가 그동안 후배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경험을 토대로 그대로 알려줬다. 처음에는 많이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연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도 했다. 선수는 자신에게 너무 인색한 면이 있다. 그래서 골프를 즐기라는 말을 하는데 연습을 덜 하라는 뜻은 아니다. 연습은 다들 알아서 잘한다. 다만 골프가 끝나면 여유를 갖고 스스로 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결국,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재충전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Q. US여자오픈 때 미국에서 열린 경기로는 마지막 대회를 치렀다. 그때 눈물을 많이 보였는데 어떤 심정이었는지, 또 카리 웹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는데 어떤 이야기 나눴나?


A. 그때도 실감이 전혀 나지 않다가 마지막 홀이 가까워지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갔다. 마지막 퍼팅을 하고 그린을 나가니 선수들이 인사를 하러 나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카리 웹이 안아주면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 골프를 사랑했고 인생의 전부였는데 막상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감정 때문에 눈물이 났다. 나에게는 골프가 아주 큰 의미였고 그것을 통해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Q. 당신은 LPGA투어에서 활약하면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지금은 그만큼 한국의 골프 코스나 대회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A. 내 생각에는 한국 선수들이 훈련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한국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외국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성장하고 있어 대견하다. 한국 선수들은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 세계무대에서도 부담감을 이겨내고 잘하고 있다. KLPGA투어 선수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지면서 자기 관리는 물론 훈련을 잘하고 있고, KLPGA투어에 부여되는 세계 랭킹 포인트도 높아져 선수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훌륭한 관문이 되고 있다.

 


Q.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A. 은퇴 후에는 그동안 느꼈던 선수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여건들을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 또 선수의 관점에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바꿔나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하루아침에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조금씩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대회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선수들에게는 훌륭한 훈련 환경, 최고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골프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이 운동만 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Q.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강점을 긍정 에너지로 꼽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긍정이란 무엇이며, 이와 관련해 KAI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A.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긍정 사고를 지닌 능동주의자들이다. KAI의 임직원들 역시 자신의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긍정의 힘을 발휘했기에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고 싶다면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KAI 임직원 모두 긍정이라는 튼튼한 뿌리를 무럭무럭 키워 항공우주산업의 역사를 써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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