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Global Story

HP Way, 실리콘밸리의 모태가 된 신뢰와 존중 HP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2월호-채색1.jpg

 

스탠퍼드대학 동창생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자본금 538달러를 들고 가정집 차고에서 창업한 HP는 전자계측기로 시작해 컴퓨터와 프린터, 서버와 소프트웨어 분야로 사업을 확대, 세계를 선도하는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자는 ‘HP Way’라는 인본주의적 기업문화를 명문화하고 ‘신뢰와 존중’이라는 핵심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엔지니어와 기술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의 모태가 되었다. 위기의 HP에 필요한 처방은 ‘HP Way’로 직원과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진단이다.

 

<글 채희숙 / 일러스트 신미래>

 

 

신뢰

자재 창고를 개방하다

어느 주말, 휴렛팩커드(HP)의 창립자 빌 휴렛이 현미경을 가지러 회사 공구 창고에 들렀다. 그런데 ‘필요 시 어느 때나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모든 공구 창고와 부품 저장소는 항상 개방해야 한다’는 회사의 방침과 달리 창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직원들이 연장과 부품을 훔쳐가지 못하게 한 조처라고 했다. 그는 자물쇠를 뜯어내 문을 열고, 그 문을 다시는 잠그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HP는 직원을 신뢰합니다!’

 

중요한 부품과 기기류가 보관되어 있는 공구 창고와 부품 저장소의 문을 잠그지 못하게 한 이유는 엔지니어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때로는 집으로 가져가 개인적인 용도로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엔지니어들이 기계와 부품을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든지, 그것을 만지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므로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는 셈이다. 그러면 회사는 계속해서 혁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방침이었다.

 

이 방침은 HP의 기본 철학인 ‘신뢰와 존중’을 상징하는 사례 중 하나다. 팩커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사 초창기 때부터 빌과 나는 휴렛팩커드 직원들에게 큰 신뢰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직원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정직하고 개방적이길 기대하며 또 그럴 것임을 믿었다.”

 

팩커드는 회사가 직원들과 동료들을 믿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점을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경험했다. 팩커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근무했던 초기 GE는 직원들이 공구와 부품을 홈쳐가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불신에 반발하여 틈만 있으면 공구와 부품을 가지고 나갔다. 그래서 휴렛과 팩커드는 자신들이 먼저 직원들에게 ‘신뢰와 존중’을 보여준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탄생

하이테크 창업정신 상징 되어

HP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초우량 기업이다.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부 동기동창인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1939년 창업한 휴렛팩커드(2002년 사명을 휴렛팩커드에서 HP로 공식 변경)는 경쟁 제품보다 성능이 좋으면서 가격은 저렴한 정밀 음향 발진기(온도 등 주위 환경이 변해도 원음을 자동으로 재생시키는 시스템)를 내놓는 등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전자계측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뒤로는 컴퓨터와 프린터, 잉크, 컴퓨터 서버와 소프트웨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일괄편집_a1.jpg

휴렛과 팩커드가 대학을 졸업한 1934년은 미국이 경제대공황의 깊은 늪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팩커드는 뉴욕주에 있는 대기업 GE에 채용되었지만 냉장고 테스트나 진공관 불량 분석 등 흡족하지 못한 업무를 맡은 데다가 불황으로 월급도 삭감되어 3년 만에 그만두고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의 터먼 교수 연구실로 돌아온다. 졸업 후 연구실에 남아 있던 휴렛과 자본금 538달러를 들고 동업을 시작한 두 사람은 팰러앨토에 가정집을 세 얻어 차고(Garage)를 연구실 겸 생산 현장으로 사용했다.

 

이 차고는 훗날 ‘실리콘밸리의 탄생지’로 인정받아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미국 연방정부의 사적지로 지정됐으며, 회사는 이를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가라지(Garage)가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창업정신의 상징이 되어 사명을 ‘Garage’로 정한 회사까지 생긴 것도 HP의 영향이었다.

팩커드가 GE에 근무한 3년은 HP의 기업문화를 창안하고 정착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기술적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 생활이었지만, GE라는 대기업의 장단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회사의 조직과 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HP Way

인본주의 기업문화를 꽃피우다

팩커드와 휴렛이 각각 1996년, 2001년에 사망했을 당시 미국 언론은 “이들의 가장 큰 업적은 HP를 세운 것이 아니라 ‘HP Way’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1957년 경영 회의에서 명문화된 ‘HP Way’는 HP만의 독특한 인본주의적 기업문화를 뜻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좋은 일과 창의적인 일을 원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성과는 저절로 달성할 수 있다’는 창업자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괄편집_a2.jpg

HP의 고속 성장을 이끌어 온 주춧돌이 된 HP Way는 5가지의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① 개인에 대한 신뢰와 존중 ② 높은 수준의 성취와 기여 ③ 윤리경영 ④ 팀워크를 통한 공동 목표 실현성 ⑤ 유연성과 혁신이다. 모든 결정에서 구성원의 의사를 중시하고, 성과를 구성원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HP Way의 대표적인 제도로는 현장순회경영(MBWA: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과 오픈도어정책(Open Door Policy)을 들 수 있다.

 

MBWA는 관리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돌면서 실무자들과 접촉하고 의사소통하는 관리 방식을 말한다. 직원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업무 파악도 하고 인간적인 신뢰도 쌓아 나가는 이 방식은 하드웨어 기업이면서도 벤처정신을 잊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 당시 미국 동부의 권위적인 대기업 문화에 비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이 관리 방식은 훗날 HP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스티브 잡스의 경영 스타일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오픈도어정책은 사원들이 제안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쉽게 상사를 만날 수 있도록 최고 경영자를 비롯한 모든 관리자들이 문과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의 HP에는 회장실, 사장실이 없었다. 전자우편은 오픈도어 정책의 실현에 큰 몫을 했다. 사원이면 누구나 회장에게 이메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고, 회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사원들의 의견을 읽어보고 답신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겼다.

 

창업자 데이비드 팩커드는 “우리가 성공을 거둔 주요인은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능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우리의 목표에 동의하게 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시킬 수 있다면 일일이 지시하거나 챙기지 않아도 그들은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원이 곧 자산

단기 경영 성과보다 엔지니어와 기술 중시

창업 초창기 팩커드의 부인은 “회사의 제일 중요한 사람인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며 매일 아침 커피와 도넛을 간식으로 가져왔다. 매일 오전 한 장소에 사장부터 여직원까지 전 직원이 모여 커피와 도넛을 먹는 HP의 커피 브레이크는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대화 부족으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실수를 없애는 제도로 알려져 삼성HP가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업무적인 혹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즉석 회의를 열기도 하는데, HP의 대표작인 잉크젯 프린터 개발 아이디어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일괄편집_a3.jpg

 

HP 인본주의의 상징적인 사례가 하나 더 있다. 1970년 당시 경기 침체로 회사는 10%의 인력을 해고해야 할 위기에 놓였지만, HP는 해고 대신 매 2주당 10일씩 작업하던 일정을 9일로 줄여 경영진과 직원 모두가 10%의 급여 삭감을 감수하는 공공 희생을 택했다. 단기적인 해결책이었지만 6개월 후 정상을 회복하여 불경기를 넘어섬으로써 회사가 직원과 함께 고통을 나눈 모범적 사례로 남게 되었다.

 

‘직원이 곧 자산’이라는 방침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HP는 철저한 인력 수급 계획에 따라 인력 관리를 했다. 호황 때 직원을 많이 뽑았다가 경영 상태가 안 좋을 때 감원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매년 20% 이상 고속 성장을 거듭한 10년 동안 직원 수를 10%밖에 늘리지 않았다. 수익성 높은 대규모 정부 수주 사업이라도 고용과 해고를 반복해야 하는 경우에는 사업 진출 자체를 포기한 적도 있다.

 

직원을 신뢰하고 존중했기 때문에 처우와 복지 역시 좋아서 HP라는 직장은 하이테크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애플 컴퓨터를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HP를 평생 직장으로 생각한 엔지니어였기에 스티브 잡스가 창업을 권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고, 워즈니악의 부모도 HP 사직을 만류했었다고 전해진다.

 

단기적인 경영 성과가 아니라 엔지니어와 기술을 중시하고 창업을 장려하는 등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철학으로도 유명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는 HP에 근무하던 엔지니어들이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갖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스핀오프’ 방식으로 독립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P는 창립 후 60년간 이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 임직원들이 이끌어 왔다. 엔지니어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중시하고, ‘목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에 의해 분권경영을 실천했다. 직원들과의 합의 과정을 통해 업무 목표를 설정하고, 직원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업무를 추진하며, 문제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고, 직원은 자율적으로 책임을 지는 노력을 통해 HP Way를 정착시켰다

 

 

 

위기

열쇠는 신뢰의 기업문화 회복에 있어

실리콘밸리의 모태가 되어 세계를 선도하던 HP는 창업자 휴렛과 팩커드가 사망한 이후 좌충우돌하는 난관을 겪다가 2015년 11월 1일 소비자 제품을 만드는 HP주식회사와 기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HP엔터프라이즈(HPE)로 분사했다. 올해 9월에는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매각해 몸집을 더욱 줄였다. 매출은 2010년 1,260억 달러(약 137조 8,000억 원)에서 2015년 1,033억 달러로 18% 감소했다. 60년 전통을 깨고 자사 출신 엔지니어가 아닌 비엔지니어 외부인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힌 결과다.

 

HP는 여전히 초우량 기업의 대표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단순히 하이테크산업의 선두주자로서 기업 경영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우수한 기술력, 인본주의 경영철학과 기업문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휴렛과 팩커드의 기부와 자선활동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초우량 기업 HP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이 시대에 따라 변하듯 기업문화도 변할 수 있다. 그러나 HP 성공 신화의 바탕에는 60년을 이어온 HP Way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표류하는 HP가 재기하려면 HP Way를 존중해 직원과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