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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히스토리

새 천년과 함께 KAI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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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온 지구가 들썩이던 때. 새 천년을 맞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 세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KAI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99년 출범 이후 KAI라는 이름으로 맞이하는 새 천년은 지구촌 그 누구보다 더 설레고 희망의 메시지였다.

 

<기획 배화윤 차장 글 김희정>

 

연재 순서

① 2000년 _ KAI, 새롭게 비상하다

② 2001년 _ 세계를 향한 희망의 발견

③ 2002년 _ 자부심의 기억 그리고 희망

④ 2003년~2004년 _ 국산 고등훈련기 개발의 태동

⑤ 2005년~2006년 _ 대한민국 공군력에 날개를 달다

⑥ 2007년~2009년 _ KAI, 세계를 호령하다

⑦ 2010년 _ 수리온,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되다

⑧ 2011년 _ 도약의 시기, 더 높이 나는 KAI

⑨ 2012년 _ 항공우주 산업을 이끈다

⑩ 2013년 _ 수리온 시대의 개막

⑪ 2014년 _ 새로운 기회, 페루를 만나다

⑫ 2015년~2016년 _ 희망의 결실, 또 다른 시작

 

 

KAI의 시작

1998년 9월 3일은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및 삼성항공 3사가 양해각서를 쓰고 통합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한 공식적인 날이다. 그리고 약 18일 후 통합회사 출범을 위한 최초의 통합 사무국이 전경련 빌딩에 마련되었다. 통합 사무국은 3명의 직원으로 출발하였다.

 

통합 사무국은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486 컴퓨터 한 대가 있었고, 프린터가 있긴 했지만 문서 출력을 한번 보내면 30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업무환경이 열악했다. 초반 두어 달 동안은 개인 책상 없이 회의용 테이블에서 일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며 그해 연말 즈음 인원은 64명으로 늘어났다.

전경련 사무실에서 있었던 약 8개월은 KAI 설립을 위해 박차를 가했던 시간이었다. 새로운 창업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준비의 시간을 지나 1999년 10월 1일 KAI가 정식으로 출범했고 얼마후 새 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했다.

 

 

 

새 천년의 꿈을 담은 KAI의 얼굴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이름은 사실 1998년 10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산업이 ‘항공우주’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한국’을 넣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항공우주산업으로 불리다가 결국 회사명이 되었다. 영문 이니셜을 따 ‘KAI’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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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의 워드마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워드마크 KAI는 미래를 개척하는 최첨단 항공업체로의 힘찬 비상을 이미지화했다. 새 천년 밀레니엄 시대의 국제화, 세계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포인트다. 영문 이니셜 K의 윗부분은 우주를 상징한다. 세계 속의 KAI, 세계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연결하게 하는 KAI, 범우주적 세계 일류기업으로서의 KAI를 나타내기도 한다.

 

볼드한 느낌은 안전제일주의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기업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안정된 회사, 건실한 회사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KAI를 이탤릭으로 표현하여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속도감과 방향성을 부여하였다. 색상은 청정하고 맑은 하늘색 꿈과 이상을 담은 스카이블루와 최첨단 산업의 미래지향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코발트블루를 사용하였다. 새 천년의 꿈을 안고 세상에 선보였던 KAI의 워드마크는 16년 만인 지난해 2016년 새롭게 변화했다. 새로운 CI에 ‘한국항공우주산업 대도약 의지와 비전’을 담아냈고, 임직원 의견을 반영해 기존 ‘주춧돌’, ‘하나 됨’을 의미하는 도형을 추가한 것이다. KAI는 CI 변경을 통해 KAI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상기하며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기업문화의 정착

서로 다른 회사가 모였으니, 문화가 다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KAI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모인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융합이 시급했다.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가진 구성원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행동양식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그 어떤 회사보다 기업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던 때였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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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호 사보에 등장하는 이현숙 사우(당시 본사 인사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당시 사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현숙 사우는 KAI라는 이름으로 채용된 첫 여성 사원이었다.

“처음 세 분과 일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씩 식구들이 늘어났죠. 그때는 소개를 안 해도 하루만 그분을 지켜보면 ‘아, 어디서 오신 분이구나’하고 알 수 있었어요. 그런 각 사의 특성들이 이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해요. 그래야 진정한 KAI의 기업문화가 생겨나고 팀워크도 생겨날 테니까요.”

 

이러한 이유로 2000년에는 특히 팀워크가 강조되던 때였다. 팀워크를 위해 사업장 간의 경영정보 및 주요 이슈사항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 채널 구축이 시급했고, 기존 출신 회사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접고 KAI인으로서의 현실을 직시하고 회사의 이익과 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팀워크 형성의 기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때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보 창간은 시의적절하였으며, 필연적이었다. 사보가 팀워크를 극대화하고 KAI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낼 소통 창구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2000년 1월,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사보 <KAI>가 창간되었다.

 

 

 

KF-16 최종호기 인도식

KAI라는 이름으로 맺은 결실은 더욱 뜻깊었다. 치열하게 일하며 성과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팀워크와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에 KAI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의 의미는 매우 컸었다. 그런 의미에서 KF-16 최종호기 인도식은 2000년 KAI의 주요 업적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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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16일, KAI 사천1공장에서 한국형 전투기 KF-16 1차 공급분 최종호기(120호기) 인도식이 열렸다. 지난 1992년부터 대한민국 공군의 전력 증강을 위해 추진되었던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이 8년 만에 1차 사업을 마무리한 것이었다.

 

한국형 전투기사업은 당시까지 국내 항공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총 50억 달러(5천억 원 상당)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KFP의 성공적인 완수를 통해 당시 초보 수준인 면허조립단계에 머물렀던 국내 항공산업의 기술 수준이 기술도입, 조립생산단계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국산훈련기 KT-1 최초호기 출하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항공기인 KT-1 기본훈련기 1호기 출하 행사가 2000년 11월 3일 사천1공장에서 진행되었다. 공군이 주관하고 KAI가 협찬한 행사로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행사였다.

 

이날은 우리 공군의 숙원이었던 공군 훈련기의 국산화 노력이 마침내 성공을 거둔 뜻깊은 날이었으며, KT-1 개발에 힘쓴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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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무엇보다 오늘 KT-1 1호기의 탄생이 뜻깊은 것은 연구와 개발, 설계와 제작의 모든 과정을 순수 자체기술로 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과학기술의 잠재력과 개발인력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라며 격려했다.

 

KT-1 개발은 공군과 국방과학연구소, KAI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KAI는 상세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며 KT-1의 주 생산업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KAI가 대한민국 항공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2000년 1호기 출하 이후 KT-1은 2001년 인도네시아 공군과의 계약을 통해 수출을 이뤄내며 대한민국 항공기 수출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고 이어 터키, 페루 등으로 수출되며 대한민국 항공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본 칼럼에 소개된 내용은 2000년 사보 <KAI>의 내용에서 발췌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2000년 주요 뉴스>

 

1월

사보 <KAI> 창간

KAI 출범과 함께 사보 <KAI>가 창간되었다. 당시 소통의 기업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두드러지던 때였고, 팀워크와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기업문화의 한 축으로 사보가 그 역할을 해냈다.

 

 

2월

T-50 정식명칭 결정

당시 개발 중인 한국형 고등훈련기의 정식명칭이 T-50으로 결정되었다. 별칭인 ‘골든 이글’도 이때 결정된 것. ‘골든 이글’은 공군이 주관해 실시한 국내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다.

 

 

3월

KF-16 최종 시험비행 성공

2000년 3월 14일, KF-16 항공기의 최종 시험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1995년 4월, 첫 시험비행 이후 5년에 걸친 552번의 시험비행을 소화한 후 최종 시험비행에 성공한 것.

 

 

4월

KF-16 최종호기 인도식

2000년 4월 19일, 경남 사천1공장에서 KF-16 1차 공급분 최종호기(120호기) 인도식이 열렸다. 당시 이억수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하기념식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5월

T-50 2000-1차 사업관리회의 실시

T-50 개발과 관련해 정부와 협력업체 간의 이견 조율과 주요 진척상황에 대한 점검 및 현안 등을 협의하기 위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6월

T-50 도면생산 신기록 수립

2000년 6월 24일, 도면생산 목표였던 2,000종 돌파를 기념하는 자축행사가 열렸다. T-50 설계부서원들이 하루 평균 100여 장을 그리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7월

항공우주박물관 건립 기공식

2000년 7월 7일, 항공우주박물관 건립을 위한 기공식이 사천1공장에서 개최되었다.

 

 

8월

KAI 홈페이지 오픈

KAI 홈페이지가 2000년 8월 5일 첫 문을 열었다. 회사소개, 항공 관련 다양한 정보와 함께 매월 발행되는 사보도 홈페이지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9월

중국지사 북경시에 개설

아시아 항공기 최대 시장인 중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2000년 9월 21일 중국 북경시에 중국지사를 개설했다. 2000년 6월 KAI는 SB427 헬기를 중국 Broad Airconditioning에 초도 납품했다.

 

 

10월

KAI 창립 1주년

2000년 10월 1일, KAI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3사 통합 이후 하나 된 마음으로 경주했던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사업 성과에 대한 자축과 비전을 향한 다짐 등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11월

KT-1 최초호기 출하기념식

2000년 11월 3일,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항공기인 KT-1 기본훈련기 1호기 출하 행사가 진행되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했다.

 

 

12월

FLIR 장착개발사업 국과연 계약체결

2000년 12월 5일, 국방과학연구소와 KAI는 전방관측 적외선장비 장착개발사업에 관한 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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