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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항공人

스텔스 기술의 요람 스컹크 웍스의 리더 켈리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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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온 오늘의 항공우주 기술을 이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있었지만 몇몇 위대한 항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성과인지도 모릅니다. 본 지면에서는 항공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며 오늘의 항공우주 기술을 존재하게 했던 인물들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만나봅니다.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소개될 예정이며 사우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글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크기변환_Clarence L_ Kelly Johnson, the legendary founder of the Lockheed Skunk Works.jpg

 

Q. 역사 속 항공人의 첫 주인공으로 켈리 존슨1) 씨를 모셨습니다. KAI 사우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1933년 록히드(현 록히드마틴의 전신)에 공구 엔지니어로 입사한 이후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에 록히드 사내 특수연구개발조직인 스컹크 웍스(Skunk Works)를 창설해 1975년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미국 스텔스 기술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죠. 록히드에서 일하는 동안 40대가 넘는 항공기 설계를 맡았어요. 대표 기종으로는 한국전쟁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제트전투기 P-80과 세계 최초의 마하 2급 실용 초음속 전투기 F-104, 고공정찰기 U-2, 마하 3급 초고속 정찰기 SR-71 등이 있죠.

 

 

Q. 말씀하신 항공기들은 시대를 선도했던 당대 최고 성능의 항공기들입니다. 존슨 씨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기종들이 아닐까요?

 

A. 글쎄요. 물론 최고의 항공기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로서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저의 재능이 결합된 산물이었겠죠. 물론 여러분께서 칭송해주시는 저의 천재성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환경이었어요. 스컹크 웍스는 50명 정도의 엔지니어들과 100여 명가량의 기계공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거대했던 록히드의 규모를 고려하면 소규모인 데다가 지극히 관료적이었던 록히드의 사내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조직이었죠. 그래도 록히드는 시대를 앞서갈 특별한 항공기 제작에 몰두하는 스컹크 웍스에 최대한의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실패도 여러 번이었지만 회사에서는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주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요인이 잘 조합되어 시대를 빛낸 여러 항공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Q. 사실 스컹크 웍스의 성공으로 다른 회사들도 그와 유사한 사내 특수연구개발조직을 많이 설립했지만 존슨 씨가 이끌던 스컹크 웍스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떤 요인이었을까요?

 

A. 사람들은 저를 ‘천재 엔지니어’로 부르지만 사실 저는 그보다 ‘조직 전문가’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스컹크 웍스를 이끄는 리더로서 하나같이 독창적인 생각들로 똘똘 뭉친 엔지니어들과 기계공들을 이끄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에 대한 평가는 ‘고집불통’, 혹은 ‘다혈질’이 대부분이었고, ‘간식으로 젊고 부드러운 엔지니어를 잡아먹는 도깨비’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혹평들을 성실성으로 극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 측면에서는 저의 신조를 지켜나갔습니다. 저의 신조는 ‘신속히, 조용히, 그리고 계획대로’였죠. 원칙을 지키고 개발에 집중하며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어쩌면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온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후임 스컹크 웍스 책임자였던 벤 리치(Gen Rich)에게 조언해 준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만든 비행기 덕을 볼 생각 말게. 자네 자신의 비행기를 만들어.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비행기를 만들면 안 돼. 자네와 스컹크 웍스의 평판에 오점을 남겨서도 안 된다고. 그저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따라 일을 성실히 추진하면 돼.”

제 조언을 잘 따라준 벤 리치와 그가 이끌던 스컹크 웍스는 세계 최초의 실용 스텔스기 F-117 개발에 성공하면서 스컹크 웍스의 명성을 이어갔으니 저의 신조가 타사들과는 구별될만한 성과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Q. 너무 많은 위대한 항공기들을 설계하셨기 때문에 한정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한 가지만 꼽으신다면?

 

A. 1960년 5월 1일 U-2가 소련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던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U-2의 개발 시기는 소련의 핵전쟁 위협이 최고조로 치닫던 195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소련이 가진 정확한 공업 능력과 전략자산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협은 더 컸죠. 그 때문에 그들의 방공능력을 벗어난 영역을 비행해 그들의 실제적인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U-2는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개발을 지시하고 개발상황을 직접 챙길 만큼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전례 없는 항속거리(8,000km) 와 작전고도(22,700m), 그리고 비행시간(10시간)을 발휘하는 U-2를 개발하기 위해 정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U-2가 최초의 소련 상공 비행을 감행했던 1956년 7월 4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첫 소련 상공 비행에서 우리의 모든 개발역량을 투입했음에도 10여 대의 소련 요격기가 출격했고 비행 내내 소련의 레이더 추적을 받았기 때문에 불안했어요. 게다가 다음 해인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스푸트니크를 우리보다 먼저 궤도에 안착시킨 것을 보고 그들의 미사일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음이 명백해졌지요. 이후 저는 U-2에 올라 직접 시험비행을 하면서 U-2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2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소련의 미사일 기술 발달 속도에 쫓기는 일이었어요.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 즉 새로운 개념의 정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도가 아닌 속도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가능케 할 기종(SR-71)에 대해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찰나에 일이 터진 거죠. U-2는 미국의 정책수립자들로 하여금 소련의 전략 능력을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주며 비행 정보 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U-2 격추사건으로 미국은 한동안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지요. 물론 이는 저와 스컹크 웍스의 업적 중에서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는 마하 3급 SR-71 개발의 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크기변환_켈리 존슨_1.jpg

<켈리 존슨이 개발한 U-2. U-2는 켈리 존슨이 개발한 항공기 중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유일한 항공기다.>

 

Q. 존슨 씨가 설계한 항공기 중 SR-71을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A. 생각해 보세요. SR-71 개발에 착수한 게 1950년대 후반입니다. 제트엔진이 등장한 지 채 10년 남짓인 시기에 27,500m 상공을 총알보다도 빠르게 나는 항공기를 만들어 내겠다고 도전했던 것이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마하 3으로 나는 비행기 기수의 온도는 480℃, 공기흡입구는 650℃까지 올라갑니다. 항공기 제작의 표준소재인 알루미늄은 150℃만 되도 강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니 당시까지의 항공기 지식 자체는 쓸모가 없게 되었지요. 결국 가공이 극히 어려웠던 티타늄으로 기체를 제작했고 86℃ 이하에서는 사실상 고체나 다름없는 특수 엔진오일을 쓰는 괴물 같은 엔진을 결합했죠. 또한 연료는 177℃까지 올라가도 불이 붙지 않는 발화점이 엄청나게 높은 연료를 개발해 사용했고 타이어조차도 내부에 수납되어 있다가 비행 중 축적된 열에 폭발하지 않는 특수 타이어를 썼습니다. 심지어 티타늄을 가공할 때 티타늄이 부식되지 않게 하는 절삭액까지 새로 개발했으니 하나에서 열까지 새로 개발하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아마 2020년에 SR-71과 같은 항공기를 개발하라고 한다면 미친 짓쯤으로 여겨질 겁니다.

작전 기간에 여러 대가 격추됐던 U-2와 달리 SR-71은 1990년 퇴역하기 전까지 24년간 소련, 베트남, 북한 등 가장 위협적인 공산 국가들의 상공을 3,500여 회, 무려 1억km를 비행하며 100발 이상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격추되거나 사고로 추락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했죠.

 

 

Q. 끝으로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들과 KAI 사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A. 저는 록히드에 공구 엔지니어로 취직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비행안정성 문제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여객기 모델 10 엘렉트라 여객기에 변경안을 설계팀에 제안했고 제 제안을 통해 문제가 해결된 것을 계기로 기술 엔지니어로 자리를 옮기게 됐죠. 저의 직무와 연관성이 없었지만 우리 회사의 일이었고 문제의식을 갖는 태도로 접근한 것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엔지니어로서 평가받게 될 수 있었던 단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매사에 애사심과 적극성 그리고 도전정신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큰 결실을 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각주.1) 켈리 존슨의 본명은 Clarence Leonard Johnson이며 흔히 불리는 켈리(Kelly)는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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