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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KAI

여러분의 추억 속 설날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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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KAI_설날1.jpg
 

<글 한율  일러스트 DK>

 

음력으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설날은 추석, 한식,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명절로 꼽힙니다. ‘설날’은 우리 고유의 단어입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와 처음은 낯설다고 해서 ‘설다’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신일(愼日) 즉 ‘삼가는 날’이라는 의미가 가장 일반적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니만큼 다른 날보다 경거망동을 삼가자는 뜻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설날이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한껏 설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몇 날 며칠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면서 설날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설날에 대한 추억을 꼽아보면 지금도 살며시 미소가 떠오르는 일이 한둘이 아니지요. 설이 되면 우선 설빔이라고 해서 새 옷이나 새하얀 운동화 등을 입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 안을 부모님 손 꼭 잡고 두리번거리던 기억, 옷걸이에 앙증맞게 걸린 옷을 몸에 살며시 갖다 대보던 순간의 떨림을 어찌 잊을까요.

 

양말 하나도 구멍이 나면 꿰매 신던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새 옷, 새 신발이 얼마나 귀하고 귀했던지 장롱에 깊숙이 넣어놓은 것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그저 흐뭇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설날은 그 어느 때보다 먹을거리가 풍성하게 많았기에 잔치 같은 날이었습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집도 설날만큼은 하얀 가래떡을 뽑고 노릇노릇 부침개를 부치는 등 명절 음식을 만들면서 즐겁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설을 앞두고 동네 사람들이 미리 전통주를 담그기도 하고, 마을에서는 돼지를 한 마리 잡아 함께 나누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정이 넘쳤습니다.

 

설날 아침이면 조부모, 부모님께 세배하고 집집이 찾아다니며 어른들께 세배했습니다.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기분 좋은 덕담을 하고 주머니에서 세뱃돈을 꺼내주기도 했지요. 이렇게 오전 행사가 끝나면 오후에는 팽이치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을 하면서 노느라고 온종일 바빴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 설날은 그야말로 ‘설렌 날’이었습니다. 설날을 앞두고 문전성시를 이뤘던 동네 목욕탕은 또 어떤가요?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가족들이 삼삼오오 목욕탕을 찾아 묵은 때를 벗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지금처럼 집집이 욕실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지금보다 훨씬 경건하고 숙연했던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설날에 대한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고향집을 찾았다가도 당일치기로 귀가하는 가족이 많아졌고 역(逆)귀성도 늘었습니다. 명절에 굳이 고향을 찾지 않고 해외로 떠나는 명절 여행족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시대의 변화와 물질적 풍요가 우리의 소중한 감성을 메마르게 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정, 이웃, 가족이라는 단어보다 개인, 혼밥, 나홀로족 등이 유행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설날의 추억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추억한 설날은 정말 그 옛날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좀 불편하고 번잡했지만, 마음만큼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넉넉했던 설날이, 설렘 가득했던 그 설날이 애잔하게 그리워지는 것은 비단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옛말에 더 이상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으면 어른이 된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은 설날이 두근두근하게 기다려지시나요? 올 설날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정을 나누는 뜻깊은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우리의 아이들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설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예쁜 한복을 입고 엄마 아빠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런 설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설날 음식을 먹고 설날에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기며 모두 신나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넉넉한 설날이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함께 배꼽 잡고 웃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통하는 방법도 더 잘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2017년을 시작하면서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은 덕담 한마디로 가족, 친척이 따뜻한 정을 나누며 건강과 행복을 소원해보길 바랍니다.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길 바라봅니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과 마주하길 바라봅니다. 잊혀가는 전통문화 속 그냥 그런 설날이 아닌 우리가 몸소 느끼고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설날, 그 소중하고 귀했던 추억 한 자락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우리에게 올 설날이 그런 행복한 날이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KAI인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추억 속 설날은 어떤 모습인가요?>

 

 

기체생산1팀 고양헌 팀장 / 50대

26년 전인 1999년. 결혼 후 처음으로 처가에 세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예식장에서 처음 본 아내의 외할아버지댁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집에는 친사위 여섯 명과 손자사위 두 명, 증손자 한 명까지 4대가 한자리에 모였지요. 그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대가족이 모인 설날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네요.

 

생산관리팀 김선옥 사원 / 30대

평소 못 만났던 친척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세뱃돈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저처럼 세배하고 있네요. 저는 시어머니와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생산지원직 박선제 수석기술원 / 50대

1969년 설날, 방앗간에서 떡가래를 뽑기 위해 줄을 길게 섰던 기억이 아련하게 납니다.

 

사업관리3팀 김영석 차장 / 50대

기차와 버스를 타고 6시간 정도 걸려 고향으로 갔어요. 그 길이 힘들었지만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매우 흥분되었어요. 돌아오는 날, 왜 그리도 발이 안 떨어지는지…. 그때가 그립습니다. 성능개량생산팀1직 김일용 조장 / 50대 아침 일찍 부모님께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은 후 이웃집과 친척집을 돌아다녔습니다. 빠르게 세배만 하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백 원에서 오천 원 사이의 세뱃돈을 받았었어요.

 

KFX비행제어팀 임영우 연구원 / 20대

저는 설날을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그간 하지 못했던 담소를 나누며 다시 한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새해의 출발을 알리며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도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어렸을 땐 세뱃돈 받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베푸는 어른이 되었네요.

 

GSE개발팀 심대근 책임연구원 / 40대

30여 년 전의 겨울, 지금은 래프팅으로 유명한 경호강에 얼음이 얼었었죠. 추운 겨울 강가의 큰 돌 위를 망치로 내려쳐 돌 아래 숨어있던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은 후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쥐불놀이하다 설빔에 구멍을 내서 부모님에게 혼쭐이 났었습니다. 부르튼 손으로 온 동네와 산을 누비던 그때의 설날을 다시 한번 겪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립습니다.

 

 

기체생산2팀3직 양기열 기술원 / 20대

저는 1남 2녀 중 막내입니다. 친누나들과 다섯 살, 여덟 살 터울입니다. 어릴 적에 설날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어요. 누나들보다 나이가 많아지고 싶어 떡국 열 그릇을 먹었지요. 다 먹지도 못하고 체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략구매팀 이승주 부장 / 50대

마을을 돌면서 어른들에게 인사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세뱃돈을 많이 받은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조립생산팀5직 김현태 전문기술원 / 40대

설날 하면 세뱃돈이죠. 큰절 한번 하고 백 원씩 받았어요. 오백 원을 주는 분은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세뱃돈으로 초등학생에게도 만 원씩은 줘야 한다죠.

 

LAH체계종합팀 장용진 책임연구원 / 40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아버지께서 항상 ‘종합선물과자세트’를 설날에 사 오셨어요. 형이랑 다퉈가며 각종 과자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죠.

 

치공구직 최승민 전문기술원 / 40대

설날엔 항상 시골 큰집으로 갔습니다. 큰집 할머니는 늘 고쟁이 안에 꼬깃꼬깃 넣어둔 돈을 주시거나 쟁여두신 곶감을 내어 주셨지요. 사촌들과 논두렁에서 썰매를 타고, 형들과 활을 만들어 토끼 같은 짐승을 잡아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논 주변에 모닥불을 지펴 콩류를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때가 가끔 생각나곤 합니다.

 

개발관리팀 하경태 수석연구원 / 50대

설날 하면은 동네 목욕탕이 생각나네요. 명절이면 목욕탕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북적거렸는데 놀기 좋아하던 그때는 동네 친구들과 탕 속에서 물장난하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고 잠시 조용히 하다가 돌아서면 다시 장난쳤어요. 철없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아마, 지금은 그런 목욕탕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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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 주제 : 졸업 •질문 : KAI인의 추억 속 졸업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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