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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항공人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된 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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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역사 속 항공人’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공군 소속으로 1,404회 출격해 352대의 적기를 격추하며 인류 역사상 최다 적기 격추 기록을 남긴 신화적인 기록의 에이스1) 에리히 하르트만입니다.


글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Q. 하르트만 씨를 역사에 남게 한 것이 인류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352대의 격추기록이라 이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군요. 베트남전에서 전설적인 에이스들이 기록했다는 격추기록이 10대 미만임을 감안할 때 352대라는 숫자가 피부로 와 닿지 않네요.


A. 단순히 352대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제 격추 스코어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중 올린 것입니다. 불과 6년간의 전쟁이었지만 세계가 그들의 모든 국가 역량을 쏟아 부었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물자를 투입했죠. 당시 루프트바페(Luftwaffe)2)는 단순히 ‘하늘을 나는 병기’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걸작 항공기들과 세계 최고 에이스의 집단을 의미했어요.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춘 항공기들을 대거 쏟아냈습니다. 저의 주기종이자 ‘살인 기계’, ‘도살자’ 등으로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유럽 하늘을 지배했던 메서슈미트 Bf 109가 좋은 예죠. 시대를 뛰어넘는 항공 기술력으로 완성한 독일의 많은 항공기 덕분에 재능 있고 국가에 헌신하고자 했던 많은 독일 공군 조종사는 다시는 없을 엄청난 격추기록이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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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대 격추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에리히 하르트만의 주기종인 Bf 109.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강의 항공력을 자랑했던 루프트바페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기다>

 

200대 이상의 격추기록을 세운 독일 공군 조종사가 저를 포함해 15명이나 되었고, 100대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107명이나 됩니다. 산술적으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한 기록을 세운 저는 훌륭한 독일 조종사 중 한 명일뿐입니다. 국가가 처한 시대적 배경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조종사들의 노력이 조합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1대의 격추기록을 보유한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과 함께 가장 빛나는 기록을 세운 분이 아닐 수 없는데요, 하르트만 씨의 천부적인 재능의 결과였을까요?


A. 저는 재능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종사입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하고 싶네요. 의사였던 아버지는 저 역시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당시 인기였던 스포츠 비행클럽에서 글라이더를 조종하며 비행에 빠져 있었어요. 조종사로서의 진로가 개인적 열망이나 재능 때문은 아니었어요. 당시 청소년 사이에서 열풍이었던 비행클럽은 독일이 재무장을 염두에 두고 전시에 조종사 양성을 목적으로 국가 차원으로 장려하던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유럽 하늘에서 승승장구하는 루프트바페에 매력을 느껴 1940년 3월 입대를 했습니다. 루프트바페에 조종사로 입대한 이후 실전을 치르는 상당 기간 역시 실수투성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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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만이 서독에서 주기종으로 조종했던 F-86. 기수의 검은색 튤립 모양 도색은 하르트만 애기(愛機)의 상징과도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종했던 Bf 109의 기수에도 검은색 튤립 도색을 한 바 있다.>


지금은 제가 신화적인 에이스로 회자되고 있지만 적의 출몰에 겁먹고 편대를 이탈한다든지, 적기를 잡겠다고 편대전술을 무시하고 편대를 이탈했다가 연료 부족으로 동체 착륙해 전투기를 망가뜨리는 등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였지요.

 

 

 

Q. 어린 나이에 조종사가 되어 실수투성이였던 하르트만 씨가 어떻게 역사에 길이 남을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A. 1942년 소위로 임관해 처음으로 배치된 부대가 동부전선의 제52전투비행단이었어요. 사실 이게 제 커리어에서 대단히 큰 행운이자 결정적인 사건이었죠. 왜냐하면 이곳은 루프트바페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 부대로서 훌륭한 조종사가 많았어요. 특히 301대를 격추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적기를 격추시킨 바르크호른도 제가 배치된 제52전투비행단 소속이었지요. 생사를 함께한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그의 존재는 끊임없이 저를 자극하고 성장시켰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의 저를 만든 이는 같은 편대의 상사였던 에드문트 로스만3)입니다. 전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혈기만 왕성한 초짜 조종사였던 저는 로스만과 함께 실전에 나갔다가 앞서 언급한 바보 같은 실수들을 저질렀어요. 적기를 격추하겠다고 정신없이 쫓다가 편대에서 떨어져 나가 적진에 고립된 저를 무선으로 유도해 구해준 사람이 로스만이었습니다. 연이은 실수로 저는 징계까지 받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로스만은 저에게 편대전술의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주었어요. 
352대라는 격추기록보다 제가 더 자랑스러워하는 기록이 바로 1,400회가 넘는 출격과 800회가 넘는 공중전 동안 저와 함께 편대를 이룬 전우를 단 한 번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짜 시절 지시 없이 편대를 이탈했다가 로스만을 위험에 빠뜨린 실수로 얻은 교훈과 그 이후 멘토가 된 로스만의 가르침은 결국 저를 훌륭한 조종사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조종사들의 헌신과는 관계없이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는 잘못된 전쟁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결국 소련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땠습니까?


A. 저는 스탈린이 제 목에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소련군에게 악명 높은 존재였습니다. 미군에 투항했지만 미국과 소련 간의 밀약으로 저를 비롯한 당시 제52전투비행단 소속 군인은 모두 소련에 넘겨졌어요.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 극심한 고초를 겪었지요. 지옥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소련 인민을 폭살한 죄를 인정하면 수형 기간이 줄어들 수 있었고, 죄를 인정하라는 협박과 회유가 계속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그저 국가에 충성하고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었기에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문에 형기는 계속 늘어나 결국 10년이 지난 1955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고향으로 돌아오니 제 나이 서른넷이었습니다. 뒤늦은 귀향이었지만 비행하기에는 여전히 젊은 나이었기에 서독 공군에 지원해 F-86 세이버를 조종하며 마지막 커리어를 보냈어요. 대령으로 퇴역한 것이 1970년 10월 즈음이었네요.

 

 

 

Q. 군에 헌신하셨던 하르트만 씨의 퇴역 시점이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사실 군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NATO 회원국들에 대량으로 뿌리던 F-104 도입문제로 인한 수뇌부와의 갈등이 결정적이었지요. 1960년 7월부터 도입된 F-104는 미국이 순수 요격용으로 개발한 마하 2급의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서독에 도입된 F-104가 무려 918대로 NATO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였어요. ‘과부제조기’라는 악명 높은 별명이 붙은 F-104의 안정성은 큰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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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문제와 더불어 동독과 대치던 서독이 수행할 다양한 공중 임무를 고려할 때 순수 요격기로 개발된 F-104 도입은 애초부터 실정에 맞지 않았다. 이때문에 당시 하르트만의 반대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지만 결국 서독의 F-104 도입은 최악의 손실률로 돌아오고 말았다.>


또 이와는 별개로 서독은 다양한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 전천후 전투기가 필요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요격 성능에 치우친 개발 사상을 바탕으로 만든 F-104는 순수 요격 임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쓸모없는 전투기였습니다. 특히나 동독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냉전의 최전방 서독의 전투기로서는 더더욱 낙제점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정치 상황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인해 F-104의 대량 도입은 강행되고 말았습니다. 300대에 달하는 F-104가 추락4)하며 저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되기도 했죠. 또한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후배 조종사들의 너무 많은 죽음은 제게 크나큰 좌절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한 말씀 부탁합니다.


A. 어쨌거나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을 떠났지만 비행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계속되었어요. 비행교관을 하기도 했고 민간 곡예비행사를 꽤 오래 했죠. 여생을 비행하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다른 조종사들과 다를 바 없이 국가와 임무에 헌신했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조종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1) 5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면 전투조종사로서의 최고의 칭호인 ‘에이스’라 부른다. 
2) 독일어로 ‘하늘의 병기’를 뜻하며 지금까지도 독일 공군을 지칭하는 단어로 쓴다.
3)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93기를 격추시킨 슈퍼 에이스 중 한 명으로 하르트만의 비행 기술과 전법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4) 1991년 일선에서 완전히 도태되기 전까지 총 298대의 F-104가 사고로 손실되어 전체 도입 대수 대비 무려 30%가 넘는 손실률을 기록했으며, 116명의 조종사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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