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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항공人

미국 항공역사 태동기를 이끈 선구자 글렌 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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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커티스 (1878. 5. 21.~1930. 7. 23.)>

 

이번 달 ‘역사 속 항공人’의 주인공은 커티스-라이트(Curtis-Wright Corporation)의 전신인 커티스 에어로플레인&모터(Curtis Aeroplane&Motor Company) 창업자이자 미국의 초기 항공업계 역사를 이끈 글렌 커티스(Glenn Hammond Curtis)입니다.

 

글 조문곤 항공전문기자

 

Q. ‘미국 최고의 모터사이클 선수가 초기 미국 항공업계를 이끌었다’는 스토리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A. 엄밀히 말하면 시작은 모터사이클이 아니라 자전거였죠. 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걸 좋아했는데 그 당시 접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계라고는 카메라와 자전거뿐이었죠. 처음에 필름회사에서 일했지만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던 제게 맞지 않더군요. 결국 경륜 선수로 활동하다 결혼을 계기로 자전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Q. 처음에는 자전거에 엔진을 달았고, 후에 비행기에 시도했겠군요.


A. 맞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했기 때문에 제가 비행기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몰랐지요. 당시는 기계를 좀 다룬다는 사람은 죄다 엔진을 이런저런 기구와 탈것에 붙여 갖가지 발명품을 만들던 때였습니다. 자전거 가게를 운영했던 저는 자연스럽게 자전거에 엔진을 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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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통 엔진을 장착한 모터사이클에 탑승한 커티스. 이 모터사이클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그리고 엔진을 붙여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1903년에는 1.6km 구간에서 최고 시속 103km를 내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3년 뒤인 1906년에는 4.4L 8기통 엔진을 달아 시속 219km를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기도 했지요.

 

 

 

 

Q. 모터사이클에 전념하다가 비행기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1907년에 지인이었던 발명가 레이엄 벨(Graham Bell)이 비행실험협회(Aerial Experiment Association) 가입을 권유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사연이 있는데요, 바로 전해인 1906년 저는 제가 제작한 엔진을 달고 기구 비행사 톰 볼드윈(Tom Baldwin)과 함께 연식 비행선을 비행했어요. 그때 탔던 캘리포니아 화살(California Arrow)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조종이 가능한 비행선이었지요. 볼드윈과 함께 비행선을 타고 비행하다가 오하이오에서는 라이트 형제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미 비행기와의 인연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 비행실험협회의 최대 관심사는 엔진이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한 지 4년이나 흐른 시점이었는데, 결국 관건은 엔진이었지요. 제가 모터사이클을 통해 다루게 된 갖가지 엔진이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비행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Q. 라이트 형제와의 악연으로도 유명하신데,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A. 제가 만든 비행기 준버그(June Bug)로 첫 비행에 성공한 것이 1908년이었습니다. 이 비행으로 저는 라이트 형제에 이어 두 번째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비행실험협회 일원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인된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죠. 
하지만 준버그는 제게 영광과 함께 큰 상처도 안겼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준버그에 적용한 날개는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한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죠. 참으로 긴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재판은 항소심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191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라이트 형제 중 소송을 맡은 사람은 형인 윌버였는데, 1912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게다가 1914년에 제가 라이트 형제와 최초의 동력비행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던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에어로드롬(Aerodrome)의 개조에 참여하면서 라이트 형제와의 골은 더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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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의 미국 최초 ‘공인’비행을 함께한 준버그. 라이트 형제와의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훗날의 얘기지만 라이트 형제와의 기나긴 싸움은 1928년에야 매듭지어졌습니다. 제가 세웠던 커티스 에어로플레인&모터가 형을 잃었던 오빌 라이트에게 인수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 업계에서 쌓았던 제 회사의 명성과 업력이 있어서 회사 이름이 ‘라이트-커티스’가 아닌 ‘커티스-라이트’가 되었습니다.

 

 

 

 

Q. 커티스 씨의 생애를 말하면서 현재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된 미 해군 항공대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을 빠뜨릴 순 없겠지요.


A. 1910년 11월 14일을 잊지 못합니다. 순양함 버밍햄에서 조종사 유진 일리(Eugene Ely)가 커티스 모델 D를 조종해 세계 최초로 함상 이륙에 성공했던 날이죠. 이를 시작으로 해서 미 해군 항공대의 다양한 항공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제가 1911년부터 미 해군 항공대에 납품한  커티스 A-1은 미 해군 최초의 수상기로, 이를 계기로 영국과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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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1월 14일 세계 최초의 함상 이륙 순간.>

 

저는 A-1을 통해 번 돈으로 다양한 항공기를 개발했습니다. 1916년 1월에는 커티스 에어로플레인&모터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회사의 규모와 항공기 라인업을 크게 늘려갔습니다. 이 항공기들은 곧이어 터진 제1차 세계대전에 군용기로 납품한 다양한 항공기의 토대가 되었죠. 

 

 

 

Q.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플라잉카(Flying Car)는 첨단 자동차기술과 항공기술이 조합된 미래 교통수단으로 꼽힙니다. 커티스 씨가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17년 플라잉카를 만드셨다는 게 참으로 놀랍습니다.


A.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오셨군요(웃음).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미국 항공 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지요. ‘오토플레인(Curtiss Autoplane)’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당시 도로는 지금처럼 포장되어 있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는 엔진을 달아도 거친 도로 상태에서 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요. 비행할 때 한없이 부드러운 느낌을 경험해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잘 정비된 도로를 달리다가 도로 상태가 나쁘거나 비행이 필요할 경우 하늘을 날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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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플레인은 실제로는 비행에 성공하진 못했기 때문에 플라잉카가 아닌 로더블카(Roadable Car)로 기록된다.>


조종사 1명과 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차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고, 뒤쪽에 8기통 100마력짜리 엔진과 프로펠러를 달았어요. 그리고 천장 쪽에 너비 12.3m짜리 날개를 장착했습니다. 의욕적으로 만들어보긴 했지만 오토플레인은 제대로 날지는 못했습니다. 주행 중 지면에서 몇 번 떠오른 정도에 그쳤죠. 온전히 비행기로서 설계에 집중해도 시원찮을 당시 상황에서 너무 시대를 앞선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고, 이를 항공 박람회에서 선보였다는 것에 의미를 뒀습니다.

 

 

 

Q. 1920년, 그러니까 마흔두 살이 되던 해에 은퇴 하셨습니다.


A.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군과 맺었던 많은 계약이 취소되었습니다. 제가 몰두하고 집중할 만큼의 역할은 더는 필요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커티스 에어로플레인&모터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무려 1만 대의 항공기를 제작했고 전쟁이 끝나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제작사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대신 은퇴한 이후에도 회사의 고문으로서 직간접적으로 항공기 설계에 관여했습니다. 항공기 설계는 일이라기보다 저 자신 그 자체였습니다.

 

 

 

Q. 마지막으로 사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역사 속 항공人’ 칼럼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 더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를 포함해 항공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엔지니어, 조종사들이 본 칼럼을 통해 사우들과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업적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사우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항공역사의 일원이자 주역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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